이곳 영천 자양면 보현리로 이사온 지도 5개월이 지났습니다.
한여름에 이사 와서 현관문 앞 데크에 얼음이 어는 겨울이 되었네예.
풍성했던 산들도 온통 나목(裸木)들로 변했지만
그래도 눈에 안 보였던 것이 이젠 보이는 것들로 많이 채워졌습니다.
제법 많은 사람들과 안면을 익히고,
동네 풍경들이 친근해지고 익숙함으로 다가온 것뿐만 아니라
보름달에는 렌턴 없이도 한밤중에 나가도 된다는것도 알았고,
달무리가 지면 담날 날씨를 짐작할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명산들의 일출들을 많이도 봤지만
매일 바라보는 일상의 일출이 또 새로움으로 와닿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보안등(촌에서는 가로등이라 부르지 않네요 ㅎㅎ)과 초승달이 어울린다는 것도 여기 와서 깨달았습니다.
카메라 들고 삼각대 세우고...
뭐 그런 작업하는 것을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ㅎㅎ
그냥 허접한 폰카입니다.
달이 뜨면 어김없이 남쪽 창에서 인사하고 왔다갑니다.
도시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 했던 경험이지요.
촌에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입니다.
직접 장을 담는 일입니다.
도시 특히 아파트에선 된장이 안 됩니다.
고추장은 이럭저럭 만들어 먹었는데,
된장만은 맛이 수시로 변하기에
도시 살 때도 산청에 사는 지인에게 항아리 사드리고
부탁하여 그곳에서 담아서 필요할 때마다 택배로 받아먹었습니다.
그거 별로 맘이 편한 것만은 아닌 것 다들 아시죠?
택배를 부탁하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 장독 관리하는 것도 미안스럽고
우리가 직접하는 것이 젤 맘 편하기도 또 만족스럽기도 하기에....
저 두 가마솥에 유기농 콩 2말을 2번 나눠 삶았습니다.
콩물이 넘치면 안 되기에 꼬박 10시간 정도를 아궁이를 지키고 있는 덕분에
결국 점심은 고구마로 때웠습니다.
점심을 군고구매로 해결한다는 것은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지요...ㅎㅎ
절구통이 없습니다.
차선의 방법으로 삶은 콩을 광목 자루에 넣고
육중한(?) 제가 밟아 으깼습니다.
그리곤 저 메주틀에 넣어 성형을 했습니다. ㅎㅎ
2.3키로 짜리 24개와 나머지 조그만 1개
지하 발효창고(겨울철에도 10~11도가 유지되는 곳입니다)에
벽돌 깔고, 그 위에 나무판자 놓고, 제법 두꺼운 단열재 덮고
그리곤 전기장판 연결하고
볏짚(요건 무농약 찾기가 어려워) 대신에 산에 지천인 억새 자르고 깔아
그 위에 광목으로마무리하여 바닥 정리 끝냈습니다.
온도 40도쯤 되게 만들어주고
다시 광목 덮고 오리털 이불 하나 덮어줬습니다.
24시간 지난 오늘 메주 한번 돌려주고 온 마눌
꼭 애들처럼 기뻐 왈
"너무 이뿐 하얀 곰팡이가 손에 잔똑 묻어 나온다"고....
이제 90%는 성공입니다.
곰팡이 옷을 잘 입으면
공기 좋은 곳에 매달아야겠지요...
여기 와서 생일도 맞이했네요.
부산에 있었으면 친구들 불러서 생일빵이라도 했겠지만,
그래도 부부 둘이서만 보내기가 조께 섭섭하여
동네 비교적(?) 청년 분들 살째기 불러서 함께 점심했습니다.
물론 예상대로 점심이 저녁까지 이어졌지만... ㅎㅎ
소박하게 마눌이 집에서 만들어준 음식으로 함께 한 생일 파티도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여유있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빔 하나 장만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영화관에 간다는 것은 참 난감합니다.
아마 동네 분들도 그렇지 싶어서,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가끔씩 체험장에서 영화도 상영하고
작은 마을 도서관도 열 생각이었습니다만...
여긴 젊은 사람들이 너무 없습니다.
애들 빌려주려고 준비했던 책들은 다락방으로 옮겨야 했고,
책을 더 채우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더군요.
해서 제가 먼저 영화를 봅니다.
체험관에 설치하려했던 100인친 스크린이라 거실에서 좀 크네예!
오디오에 연결해서 우퍼스피커 4까지 올려 봤습니다
(아파트에서 우퍼 스피커 틀면 바로 항의 인터폰 오지요..ㅋㅋ)
느긋하게 술도 한잔 하면서 봤습니다.
아마 도시 삶이었다면
컴에 연결하고, 오디오 연결하고, 스크린 설치하고
볼 영화 찾고... 이런 복잡한거 안 하고 그냥 영화관에서 봤지 싶습니다.
둘이서 손 잡고 마눌은 숭늉, 저는 술잔을 부딪치며 보는 영화도
행복함이었습니다.
오늘은 양껏 청소하고 점심 먹고
요렇게 포스팅 하나 하면서
느긋하게 커피도 내려 먹습니다.
직장 생활할 땐 차 한잔 내려 먹는 것도 어려웠는데....
11월엔 모친을 떠나보낸 슬픈 일도 있었습니다.
졸지에 혼자 계신 구순을 넘기신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서
1달에 1번 이상은 꼭 반찬 몇가지 들고 내려갑니다.
가서 하는 일이라곤 함께 밥 먹고 냉장고 정리해주는 일밖에 없지만,
아버진 반찬 가져오지 말라는 말씀만 늘 하십니다.
그 말 뜻이 무엇인지, 행간의 의미까지 알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께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돌아오고 맙니다.
새롭게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자연의 경이로움,
그리고 비로소 느끼는 촌생활에서 삶의 여유가
아버지만 생각하면 마냥 죄스럽지만
오히려 아버지 당신은 아들이 촌에서 고생하며 산다고 늘 걱정입니다.
낼 모레이면 60을 넘기는 아들이 아직은 못 미더운 모양입니다.
요렇게 쓰면서 또 한번더 아버지를 떠올리고
낼은 마눌 해주는 황태찜과 대구탕 그리고 밑반찬 들고
아버지께 내려가려 합니다.
담은 내년에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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