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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첫날 / 1월 23일 (월)
24일 오전 11시
정확하게 베트남 항공기는 출발했다.
유적 답사회 회원 선생님들 총 17명
우리를 포함한 부부가 네 팀
베트남 남부의 호치민에서 1박 2일
캄보디아로 넘어가서 2박 3일
다시 베트남 북부의 하노이와 하롱베이에서 2박 3일
총 6박 7일의 일정으로 떠났다.
가운데 통로를 두고 세 좌석씩 있는 항공기가
어찌나 작고 불안한지, 5시간 30분 비행 시간동안
혹 만약에 하는 맘이 들기도 했다.
입에 맞지도 않는 베트남식 기내식이라
대충 허기만 면하고 물렸는데
세상에...나중에 선상 디너까지
우리 시간으로 10시 30분이 되도록
물밖에 아무 것도 못 먹고...
4시 30분
거의 95%를 한국인으로 채운 베트남 항공기가
베트남 남부의 최대 도시 (제 2의 수도)
호치민의 <탄션넛>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시차가 2시간 나는 까닭에,
모두들 손목시계 바늘을 2시간 뒤로 돌렸다. (2시 30분)
호치민은 예전에 사이공이라 불렸던 월남의 수도였지만,
월맹으로 통일된 뒤에는
수도는 북부의 <하노이>가 되고
지금은 위대한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의 이름을 따서
호치민시라 불리는 베트남 최대의 경제 도시가 되었다.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에 대해서는 나중에 소개함)
-베트남에서 절대 인용하지 못하는 이름이 있으니 그것이 호치민이다.
절대 호치민을 상호 그 어디에도 못 쓴다고 한다.
그들의 호치민에 대한 것은 거의 신격화 되어 있다
북한의 군인들 같은 복장을 한 출국 심사대 직원들이
어찌나 까다롭게 심사를 하는지
일행 17명이 심사대를 다 빠져 나오는데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여권 사진 너무 오래된 것은 사진 미리 바꿔라.
밖에서 기다리던 현지 가이드는 기다리다 지쳐있고...
<베트남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도 에어컨이 잘 나오는, 한국에서 수입된
중고 버스에 앉자말자 현지 가이드의 인사말이다.
온통 한국 글씨 투성이의 버스가 많다.
-건데 재밋는 것은 버스에 잘못 쓰여진 우리말이다
예를 들면 롯데백화점 참실점(잠실점이 아님),
혹은 영동점이라고 해놓고 '영'자만 눕혀두었다.
유리창 밖을 내다보니 바로 이런 풍경이다.
온통 오토바이 물결로 차량이 서행을 할 판인데
가이드 말로는 이건 한산한 거란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오토바이 세상인 도로라니...
건데 정말 기통차게 사람을 피해서 간다.
절대 오토바이가 멈추는 경우가 없으므로
천천히만 걸어가면 스스로 오토바이가 피해서 간다.
재밋는 사실 또 하나는 오토바이에서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는 연인들과
주행하고 있을 때 뒤에 타고 있는 여자의 손의 위치로 그 친밀도를 짐작할 수 있다나....
그래도 5성급 호텔이라고 하는 <옴니 사이공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내가 언제 별 5개짜리 호텔에서 자 보냐?
7개짜리 호텔도 있더라만......
여하튼 그냥 있을 수 없어 호치민 시내 구경을 나섰다.
맨처음 간 곳이 재래 시장인 <쩔렁 시장>
우리 나라의 동대문 시장쯤 되지 싶다.
온갖 70년 대의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그 중에도
첨 보는 열대 과일들이 단연 눈길을 끈다.
또 온갖 짝퉁 물건도 보인다.
들고 있는 이 과일은 일종의 선인장인 샤보텐 열매인데
<탄롱>이라 부른다. 속은 하얀 속살에 검은 깨 같은 씨가
송송 박혀있는데 맛은 덜쩍하면서 무른 게 별 맛은 없다.
계속해서 온갖 열대 과일을 다 먹어 봤지만
역시 한국의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이 최고다.
수박도 흔하긴 한데 왜 그리 퍼석한 게 물기도 없고 맛이 없는지...
미로 같은 시장을 빠져 나와
약 10분 거리에 있는 호치민의 중심지로 들어섰다.
베트남은 거의 천 년의 시간을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다시 근세로 와서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프랑스 식민지로 있었으며
1940부터 5년간은 일본의 통치를 받다가
우리와 같이 45년에 해방을 맞이하는 비운의 나라다.
그러한 까닭에 모든 식생활이 거의 중국과 유사하다.
열대 기후에 속하는 남부 지방에는 풍부한 과채류가 생산되건만
오로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싱싱한 야채를 기름에 볶아 주는 통에
아~~! 돌아가실 뻔했다. 아작아작한 야채 먹고 싶어서...
그러나 베트남은 자원이 풍부한 축복받은 나라다.
동쪽으로 1400Km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온갖 풍부한 해산물이 있으며, 석유 생산국이고
또한 커피 수출국 세계 2위며, 쌀이 연간 4모작이나 되니
남아 넘쳐서 온 국민의 주식이 쌀국수이다.
물론 그 쌀은 펄펄 날아가는 안남미라 우리에겐 안 맞지만...
이 사진은 바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은
<노틀담 성당>으로 완벽한 프랑스 풍의 건물이다.
지금도 안에 사람이 상주하며, 시간이 되면 예배도 본단다.
해가 진 다음에 도착한 까닭에 사진이 좀 깨끗하지 못하다.
호치민시는 예전에 사이공이라 불렸던 월남의 수도였지만,
75년 4월 사이공이 함락된 뒤, 사회주의로 통일되어
지금은 제 2의 도시이자 베트남의 경제 수도이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다.
땅 한 평에 8천만원 하는 곳도 있단다.
당연히 빈부격차가 큰 곳이다.
베트남의 화폐는 ‘동’이라 하며 1$를 바꾸면 약 17,500동이 된다.
보통의 노동자들이
한달에 팔십 만에서 백이십 만동 정도의 급료를 받는다고 하는데,
실제 이 나라 화폐는 거스름돈 정도로만 쓰인다.
거의 U.S달러를 사용한다.
호치민은 우리 나라의 70년 대와
2000년 대가 공존하는 이상한 도시다.
전화 보급률이 20% 밖에 안 되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유선이 끝나기 전에 무선으로 벌써 넘어간 사회이다)
우리 나라의 삼성 휴대폰이 고가 정책으로
성공해서 휴대폰 시장의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단다.
(물론 베트남 정부에서 밀고 있는 ‘노키아’가 아직은 1위이지만..
그들이 가장 가지고 싶은 휴대폰은 삼성거란다.)
도시 군데군데 삼성과 LG 간판이 두드러져 보인다.
여기는 성당에서 도로 하나 건너에 있는 <중앙 우체국>이다.
밤 10시까지 업무를 본다고 해, 겨우 전화를 한 통화했다.
국제 전화비가 넘 비싸고, 전화할 만한 곳이 없어
이후로는 귀국할 때까지 전화를 한 번도 못했다.
아니 그냥 안 했다. 그냥 여행에 충실하기로 했다.
중앙에 걸려있는 초상화가
그 유명한 베트남 인민의 아버지 <호치민>의 초상화이다.
호치민의 사저와 박물관은 북부에 있는 수도 하노이에 있으므로
그때 설명하기로 하자.
호치민에서 최고의 번화가 <동코이>거리이다.
아마 서울의 명동거리에 비교할 만한 곳이다.
이 곳을 통과해 쭉 걸어가다 보면
고급 호텔도 밀집해 있지만, 무엇보다 베트남의 또 하나 명산물
실크 가게가 밀집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수많은 실크 가게 중, <카이 실크>란 유명 브렌드가 가장 알아준단다.
실크가 많이 생산되니, 모두가 100% 실크 제품이지만
직조 기술이 부족해선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또한 여기도 짝퉁이 엄청나다.
누가 몽블랑 만년필을 15불에 사는 것을 보았다. ㅋㅋㅋ
베트남 하면 누구나, 오토바이와 아오자이를 떠올린다.
무질서하게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는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거리엔 온통 오토바이로 넘쳐나고
사람들은 횡단보도도 없는 길을 곡예하듯 건넌다.
아오자이란 옷을 자세히 보면 상당히 선정적이다.
대부분 얇은 실크로 되어,
윗옷이 아래쪽까지 내려온다는 뜻의 아오자이!
몸에 착 달라붙어 몸의 곡선이 그대로 노출된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면,
가슴에 대부분 봉이 많이 든 브라를 하고
속옷은 입지 않아 아오자이 윗도리의 옆에 연결되는 부분을 보면
맨살이 살짝 드러난다.
아래쪽은 통바지 형식의 바지를 입고
그 위에 보통 대비되는 색의 윗도리를 걸치는 형인데
만약 살이 많이 쪄 아랫배가 나온 사람은 절대로 입지 못한다.
그래서 베트남의 아가씨들은 아오자이가 잘 어울리도록
엄청 몸매에 신경을 쓴단다.
정말 하루종일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고 배가 나오지 않으려면
얼마나 필사의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만하다.
근데 베트남 아가씨들을 자세히 보면,
대체로 상체가 짧고
롱다리 형의 환상적인 몸매들을 하고 있다.
아마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통해 그 쪽 사람들과 체형이 혼합된 듯하다.
가이드의 말에
어떤 한국인 여행자 남정네의 말이 자기 소원이 있는데,
비 오는 날 흰색 아오자이 입은 여인을
빗속에 세워두고 감상하는 거라고 말했다나 어쩐다나!
그건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이기도 하다. ㄲㄲㄲ
어느 <카이 실크> 가게의 3층이다.
이 가게는 거의 동코이에서 가장 큰 실크 가게인 듯했다.
3층에는 속옷과 잠옷, 그리고 쇼파 같은 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가격은 한국의 물가로 따지면 싼 편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아주 비싼 명품점인 모양이다.
종업원들이 거의 영어가 잘 통하고, 특히 화장실 시설이 잘 되어있다.
베트남에서는 우리가 갈 수 있는 화장실이 거의 없다.
따라서 가이드가 화장실 갈 만한 곳은 꼭 말해 준다.
시계가 7시(한국시 9시)를 넘어서고 있는데,
거리에서는 절대로 아무 것도 사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는 까닭에
배가 넘 고픈데도 계속 물만 마셨다.
물도 모두 한국에서 자기 먹을 만큼씩 사 가지고 갔다.
세상에 외국에 가면서 물까지 사들고 가야하다니....
수놓지 않고 만든 아오자이 한 벌(보통 수준)에 30$
몸매에 자신있는 한 여선생님이 사셨다.
나머지는 모두 눈치만 보고 멀뚱멀뚱 ...
동코이 거리에 다음으로 많은 가게가 바로 이 자수 그림 가게이다.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한 올 한 올 색색의 실로 수놓은 액자다.
안 쪽에 가면, 아오자이를 입은 나이 많은 여인네들이 몇 명씩 마주보고 앉아
한 올씩 수를 놓고 있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은 연상시키는 여인들!
베트남은 확실한 모계 중심 사회다.
오랜 식민지 시절과 전쟁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전쟁이 나면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야 한다고 믿으므로
평상시에는 당연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시건, 시골이건, 여자들이 모든 일을 해낸다.
대신 경제권도 여자가 가지고,
바람을 피워도 여자가 피우면 용서된다고 한다.
여자들이 당당하고, 그래서 어찌보면 안쓰럽도록 일을 한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론 놀고 먹는다는 점에선 부럽고
또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다.
오토바이가 그렇게 많은 이유도 즐길 것이 없고 집안이 덥기에
그냥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오토바이 타고.....
아침밥부터 베트남 사람들은 거리에서 사 먹는 걸 즐긴다.
여자들이 모두 일하러 나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들어 먹는 것 보다, 싸고 편하기 때문이란다.
‘퍼’라고 하는 쌀국수를 아침이면 거리 곳곳에서 사먹는 모습이다.
연간 4모작이 가능하니 쌀은 남아돌고, 밀가루는 전량 수입이라 비싸단다.
‘퍼’에는 ‘퍼 보’와(쇠고기 국물) ‘퍼 가’(닭고기 국물)가 있다.
근데 조류 독감으로 닭고기는 정부에서 모두 폐기처분한 까닭에
지금은 ‘퍼 가’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길거리 ‘퍼’ 한 그릇에 우리 돈으로 300원 정도인데
우리 동네에 있는 베트남 요리 전문점에선 쌀국수 한 그릇에 자그마치 8000원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하지만 우리는 가이드의 엄명에
길거리 쌀국수를 끝내 사 먹지 못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동코이 거리를 지나 끝자락에 위치하는 사이공 강의 유람선에 마련된
<선상 디너>를 먹기 위해 도착하니...세상에... 8시 30분 (한국시 10:30)
거의 9시간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다니기만 했으니...
(먼저 다녀온 친구의 배부르게 묵는다는 말을 쌤들에게 인용했다가 이 날 맞아 죽는 줄 알았다.)
선상 디너에 나오는 음식은 사실 별로 맛난 것도 아니었는데
모두들 허기가 져서 나오는대로 허겁지겁 먹어 치웠는데
게 중에 제일 먹을 만한 게 중국의 ‘춘권’ 같은 밀전병이다.
허옇게 고춧가루 발라놓은 듯한 김치도 주긴 한데... 영~ 아니다.
근데 채 밥을 다 먹기도 전에
(사실 펄펄 날아가는 밥이라 젓가락으로 먹기가 영 어렵다.)
밴드가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는데
거의 한국 노래를 발음도 잘 안 되게 노래를 부른다.
가이드 말로 노래 한 곡하면 예의로 1$를 주라고 했는데
우리 일행 말고, 양 옆으로 자리한 한국 사람들이
어찌나 정신없이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는지
(사실 좀 부끄러운 수준으로 의자에 올라서고 고래고래 고성방가)
조용히 디저트를 먹을 수 없어 배의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는 서양 외국인 전용층인 모양인데 훨씬 조용하고 분위기 있다.
전통 악기도 연주해 주고, 뭔가 메뉴도 달라 보인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왠지 차별당하는 느낌이 든다.
하기야 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호치민을 지나는 두 거대한 강줄기는 <사이공강>과 <메콩강>이다.
사이공강은 폭도 넓고 깊이도 깊어서 제법 많은 컨테이너들이 지나간다.
조그만 엔진을 단 배가, 제 몸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컨테이너를 싣고 간다.
도시를 관통하는 사이공강은 그야말로 오염이 될 대로 되어서 악취가 날 정도지만
내일 여행하게 될 <메콩강>은 아직 그래도 자연 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강이다.
베트남 남부 쪽은 지금이 겨울인데도,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서고
그래서 베트남인들은 반드시 낮잠을 잔다.
아침에 해가 뜨기 전,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11시 30분까지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한잠 자고
2시 무렵에 오후 일을 시작하면 5시 경에는 마친단다.
사실 일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리 능률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풍부한 자연 자원에도 불구하고, 아직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진출한 기업들이 현지인들의 이런 습관 때문에
업무 목표 달성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도 오랜 그들의 문화인 것을 인정해 주지 않을 수 없다.
식사를 시작하면 배가 사이공 강을 떠나 밤의 강을 한 바퀴 돌아온다.
아래로 강을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온갖 오물들이 다 강물 위로 떠 온다.
낮이면 정말 더러워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겠지만
밤이라 그래도 맞은 편, 유람선의 불빛이 아름다워 보인다.
아오자이 자락을 휘날리며, 유람선 선상에 선 콩까이(아가씨)들이
까무잡잡한 피부처럼 매끄럽고 싱그러워 보인다.
남자 선생님들 모두 함께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역력하지만
뭐라 말을 붙이지는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눈치다.
특히 혼자 간 유부남과, 총각 선생님들!!!
그러나 이들은 베트남인들이 아니라 거의 일본인들이다.
일본인들이 아오자이를 입고 여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머쓱한 분위기를 깨려고 한 선생님이 농담을 한다.
아가씨는 <꽁까이>, 총각은 <꽁까지 마>
모두 배를 잡고 웃는데, 덕분에 시선이 우리들에게 집중된다.
밤이 깊어가고, 선상 디너쇼도 거의 파장이 되었다.
매력적인 베트남 아가씨가 나와 비키니 차림으로 <불쇼>를 시작했다.
긴 머리카락에 불이 붙을까 걱정스런 맘도 있었지만
아가씨는 능숙하게 잘도 쇼를 진행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10시 30분
샤워하고 하루 일정을 마감하는 모임을 하니 11시가 넘었다.
우리 시간으로 1시가 넘어서니, 그야말로 맥이 탁 풀리고 피곤하다.
그래도 호치민의 맥주 맛을 보아야 잘 수 있지 않겠냐?
맥주 종류는 딱 3가지
베트남 사람들이 그렇게 폼 잡고 먹고 싶다는 ‘타이거’ 맥주도 먹어 보았고
그리고 333 맥주,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있는 하이네켄도 먹었다.
더운 나라라 독한 술은 팔지도 않고 또 별로 먹을 맘도 없기도 하여
그냥 하루를 마감하는 맥주만 종류별로 하나씩 먹어보고
꿈도 없이 깊은 잠!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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