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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여행기

충남을 돌아보다 1일차 - 예산 추사고택, 서산 마애불, 개심사, 만대항

 

 

황금연휴입니다.

6월 3일 개교기념식을 하고, 4일 지방선거로 임시공휴일, 5일 개교기념일, 7일(토), 8일(일)

3일(화) 오후부터 8일(일)까지 휴일이다.

이런 황금 찬스는 없었습니다.

 

해외로 나가려 했으나 세월이 하 수상하여

조용히 국내로 돌기로 합니다.

부산에서 가기 어려운 변산, 태안반도도 코스를 잡습니다.

1995년에 갔었고, 2003년에 간 기록이 있네요.

 

4일 아침 선거 마치고 10시 반에 남산동에서 출발

 

제일 첫 코스로 예산의 추사고택으로 잡습니다.

남산고에서 출발하면

경부(1) - 중앙지선(551)  - 부산대구(55), - 경부(1)  - 호남지선(251) - 당진대전(30)의 수덕사I.C로 나오는 코스로

고속도로 6개를 타고 350키로 정도 갑니다.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금강휴게소에서 점심을 때웁니다.

집에서 준비해 간 유뷰초밥(요거 마눌이 만든 것이지만 디기 맛이 좋습니다, 요거 묵다가 파는 것은...)

휴게소의 백미 우동 한 그릇 사서 먹습니다.

 

예전 대전역에서 정차 시간에 우동 한그릇 먹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요때가 1시 20분 경이네요. 집에서 거의 3시간을 왔네요.

 

금강휴게소의 옆에는 금강이 흐르는 것 아시죠?

상, 하행 하나뿐인 휴게소이고요....  

 

휴게소에 아마 숙박시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바로 옆에 휴양지로 잡고 쉴 수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자물쇠가 유행하더라는....

 

그렇게 점심을 먹고 수덕사I.C를 빠져나가 추사고택에 도착합니다.

3시 도착! 점심 시간 1시간을 빼면 3시간 30분만에....

거의 날아왔네요. 분명 과속했지 싶은데...

사실 이 동네는 수덕사가 더 유명하지요,

이응노 화백의 수덕여관......

 

우리나라 유적 답사를 한창 다닐 때는

뭐가 있을까, 무엇을 봐야 할까? 등

미리 공부하고 갔었는데 요즘은 교만이 충만하고, 또 예전만큼의 감수성도 떨어지고,

그리고 이젠 아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준비없이 그냥 즐기고 느끼려 합니다.

 

이곳은 조선후기의 대표적 서예가이었던 秋史 金正喜선생의 유적지로 추사고택과 화순옹주묘(영조의 2녀)및 정려문이 있으며

추사선생의 묘와 천연기념물 제 106호인 「예산의 백송」 그리고 추사께서 수도하던 화암사가 인근에 있다.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께서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써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으로 후손이 세거(世居)해 오다가

1968년 타인에게 매도된 것을 충청남도에서 1976년 1월 9일 지방문화재 제43호로 지정하고 동년 4월 25일 매수(賣收)하였다.

그후 故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로 유적정화사업을 1976년 9월 4일 착공하여 1977년 6월 27일 준공을 보았으며

1977년 9월 22일부터 충청남도 추사고택관리사무소를 설치하여 관리하여 오다가

1980년 1월 1일부터 예산군 추사고택관리사무소로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 추사의 학문과 예술

추사 김정희 선생은 누구나 알듯이 '추사체'로 상징되는 한말 글씨의 명인이다.

또한 그는 청나라의 고증학을 기반으로 한 금석학자이며 실사구시를 제창한 경학자이기도 하며 불교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추사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였으며 당대 실학의 거두 박제가(1750-1805)가 그를 가르쳤으니 추사의 실학은 그에게서 비롯한다.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며,

병조참판인 김로경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로영에게 입양되었다.

선생의 벼슬은 병조판서와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당시의 당쟁에 휩쓸려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0여년간 유배생활을 보내고

말년에 생부 魯敬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71세를 일기로 1856년 10월 10일 작고하였다.

선생은 단순한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시대사조의 구문화 체제로부터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노쇄한 조선왕조의 구문화 체제를 탈피하여

신문화 전개를 가능케한 실학자인 동시에 선각자이기도 하다.

선생은 북학파의 거벽으로 청조의 고증학풍을 도입하여

학문으로는 경학(經學), 불교학, 금석학(金石學), 문자학, 사학(史學), 지리학,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박통하여

북한산 기슭의 비석이 신라진흥왕의 순수비임을 고증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원당집(院堂集),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원당척독 (院堂尺牘), 담연제집(潭연濟集) 등이 있다.

이와같이 광범위하고 철저한 학문과 천부의 재질을 바탕 으로 한 추사의 예술은 시, 서, 화, 전각(篆刻)등에도 뛰어났으며

書道는 추사체라는 독자일문을 열어 서예사상 至高의 경지를 이룩하였다.

작품으로는 「묵란도(墨蘭圖), 묵죽도(墨竹圖)」와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등이 있다.

 

2. 추사의 고택과 유적

충남 지방문화재 제 43호인 추사 고택은 그의 증조부로 英祖의 장녀인 和順翁主에게 장가든 月城尉 김한신(1720-1758)이

18세기 중엽에 세운 것으로 1977년 해체 복원되었으며, 보물 제 547호로 지정된 추사 遺物과 遺墨 등 111점도 보관되어있다.

추사고택은 80.5평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가 있다.

 

안채는 6간 대청과 2간통 의 안방과 건너방이 있고 안방및 건너방의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안방 및 건너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천정은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 사이에 있는 대청은 6간으로 그리 흔하지 않은 규모이다.

이러한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형이다.

 

화순옹주 묘는 추사의 증조부이며 옹주의 부군이신 월성위 김한신 묘에 付左합장되었다.

정려문은 추사 김정희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고자 정조가 명정(命旌)한 烈女門이다.

화순옹주는 부군 월성위 김한신(1720-1758)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하자

그때부터 식음을 전폐하여 부왕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군을 따르고 말았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져버린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정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명정하였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추사묘는 과천에 안장되어 있던것을 1937년 先祖가 있는 이곳에 이장하였다

예전에 조사해서 가져갔던 자료집 일부를 다시 복사해 보았습니다.

글자가 많아서 죄송스럽습니다....ㅋㅋ

개략적인 소개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때는 꽤나 열정이 잇었던 것 같네요...

선생 집단이 모여서 답사를 했으니 역사, 문학, 지리, 경제, 지질...'자기들 전공별로 조사해서 자료집을 만들었던 기억이

이때만 해도 답사 자료라는 것이 없었던 시기인데...

우리 자료집 출판하자고 했던 팀들도 꽤나 있었는데...ㅋㅋ

 

아무튼 입구입니다.

 

요기는 추사 체험관입니다. 

 

이런 안내글과 함께...

금석학의 최고인 추사가 밝혀낸 진흥왕 순수비는 학회에서 인정하는 것 맞는데,

세한도에서 아끼는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줬다는 내용은...

아끼는 제자라는 단어에서 걸리네요.

 

국보 180호 문인화입니다. 지극히 단순한 그림이지요.

이 그림이 국보로서 인정 받는 것은 그림이 추사 것이란 점에도 있지만

그림 끝에 작화(作畵) 경위를 담은 작가 자신의 발문(跋文)과 청대(淸代) 16명사들의 찬시와,

이어 뒷날 이 그림을 본 김정희의 문하생 김석준(金奭準)의 찬문과

오세창(吳世昌)·이시영(李始榮)의 배관기 등이 함께 붙어 긴 두루마리가 그 가치를 더해준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은 역관으로서 유배 간 추사에게 책 등을 주면서

지금 말하면 의리를 지킨 사람입니다.

해서 이 그림을 줬다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역관인 이상적이 이 그림의 가치를 높히기 위해

청의 명사들의 찬시를 받아왔다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애들 데리고 저렇게 탁본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우린 탁본 대학에서 겨우 맛볼 수 있었는데....

아무튼 애들 데리고 가는 사람들은 체험을 함 해볼 만합디더!

 

요게 사랑채입니다.

생각보다는 수수하게 지어졌지요!

그러나 주춧돌만큼은 많이 높게 놓여져 있습니다.

 

곳곳에 현판이 걸려 있고 

 

각 기둥마다 주련이 붙어 있습니다.

요건 서예여고고송일지

'서예는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다' 

글씨 쓰는 추사의 외움을 그대로 표현한 글입니다.

 

 추사의 호는 엄청 많다고 합니다.

보통 200개가 넘는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300개가 넘는다고도 합니다.

우리가 많이 아는 추사, 완당 말고도 풍월주인, 노과.....등

 

이런 현판 외에도 대둔사, 은해사, 제주도... 등 각지에 참 많지요!

글씨체는 참 독특합니다.

당시 서예가들이 기껏 남의 체를 흉내내어 베껴쓰던 것에 비한다면... 

 

사랑채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입니다. 

 

요건 해시계...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되어 있고 

안채는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너무 정신을 놓은 것일까?

안채로 가볼 생각을 못 했어요. 

 

요 앵두도 따먹고... 

 

 

뒤의 사당은 멀리서만 찍었네요.

 

요 우물은 입구가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주위의 앵두도 또 따먹고...ㅋㅋ

 

덕분에 턱이 지나치게 높았던 기억이 나는 안채도 못 찍고,

무덤도 백송도 사당도 못 찍었습니다.

도대체 뭘 핸건지...

마눌에게 찍사로 따라가기로 했는데...

시꺼묵겠습니다. ㅜㅜ

 

 

 추사고택에 대해선 글자가 너무 많아서 읽기가 좀 그랬지요?

이제부터는 그냥 사진으로 감상을....

 

1시간 정도를 보내고 근처 25키로 정도에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찾아 갑니다.

(4시 반경)

흔히 백제의 미소로 알려져 있는 마애삼존불!

여기까지 일반 버스가 들어오네요!

 

입구부터 뭔가 있어 보입니다.

곳곳에 무슨 길들을 만들어 두었네요. 

 

다리를 건너기 전에 계곡을 보니 물고기가 양껏.....

그래서인지 바로 앞에 어탕을 파는 식당이...

 

올라가는 길을 나무 계단으로...

예전에도 계단이 있었나?

첨 보았을 때 뭔 이런 불상이 다 있을까? 하던 감흥이 이번에도 살아날까요?

 

불이문을 거쳐.. 절대 많이 오르는 길 아닙니다.

한 5분 가량... 

 

그런데 아니 이럴수가...

보수 공사중이다. 누수를 막기 위한 공사라고 한다...

아~~! 

 

철근 지지대를 피해 간신히 구도를 잡아본다.

어렵다

중앙의 본존불,

좌측의 보주를 든 보살,

우측의 반가사유상을 하고 있는 보살

(불은 부처님이고 머리는 뽀글뽀글... 보살은 부처가 되기 이전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음)

다 아는 내용을 설명했나요? ㅎㅎ 

 

아무튼 저녁 무렵에 왔을 때 이동 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춰주면서

백제의 미소를 설명해 주던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마냥 신기해 하면서도  백제의 조각 기술에 탄복한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이 본존불을 가까이 땡겨 찍은 것은 광배에 11시, 12시, 1시 방향에 부처임을 또 새겨 두었네요.

예전에 못 보던 것을 이 고장에서 놀러온 분이 이야기해 주네요.

맞네요. 딱 있습니다.

하나하나 정성을 쏟은 것이 맞네요. 

 

다음에 올 때는 물 새는 것 없는 백제의 미소를 볼 수 있겠지요!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곳이랍니다.

해서 바위 틈에서 자란 저 소나무가 저렇게 잘 자랄 수 있다네요.

믿거나 말거나....

보통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그려보면

분명 엄청나게 곧고 잘 자란 소나무 맞습니다. 

 

참, 예전에는 삼존불을 보호하기 위해 전각을 세우두었는데 그 전각명이 고란각이었습니다.

주위에 고란초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개심사로 갑니다.

약 20키로 남짓 도착하니 5시 반경

 

서산마애불보다 이전에 조성된 태안 마애삼존불 있기는 하지만

서산 마애삼존불에 비하면 훼손도 심하고 예술성도....

단지 중앙에 관음보살을 양 옆에 부처님을 세운 것이 특이하기는 한데...

시간도 늦었고 이원반도 제일 위에까지 올라가야 하므로...

 

대웅전이 보물이랍니다.

 

상왕산 개심사, 마음을 여는 도량... 

일주문을 통과합니다.

 

요 일주문 앞에는 점빵이 제법 있고 난전을 펴고 뭐 파는 할머니들도 있습디다!

 

시멘트길이 아니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드네예!

 

여기 온 것도 꼭 여름, 겨울에만 왔네요.

벚꽃 피는 봄이나, 단풍 드는 가을에 함 올 수 있다면.... 

 

제법 고찰인 것이 표시 나나요?

 

요것도 사진을 잘못 찍었네요!

요 안양루는 밑의 축대까지 넣어서 찍어야 하는데... 

요 심검당의 덧집도 심검당까지 찍었어야 했는데...

워낙 이 덧집이 눈에 팍 들어오기에...

첨 이것을 봤을 때는 몬드리안은 저리 가라할 느낌을 받았지요!

자연 그대로의 나무로 중간중간 면 나눈 것은....

지금은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네요.

 

해우소도 개심사의 특색 중 한 곳인데...

지금은 개수하여 생략!

 

요기는 감로수인데 지금은 가물어서 물이....

대신 옆에 하수오가 엄청나게 많이 심어져 있더라는....

 

내려오는 길에 바라본 범종루!

 

어치 같네요.

일주문 나와서 서산 마늘이 좋다고

마눌 한 접을 삽니다.

그것 줄기 짜른다고..... 시간을...

그래도 마눌은 좋은 마늘 샀다고 흐뭇해합니다.

여행을 다녀도 주부는 주부인 모양입니다.

 

 

이제 숙소로 가는 길의 서산 한우목장입니다.

여의도의 3배 정도의 크기의 목장입니다.

초기의 주인인 김종필 씨가 국가에 헌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 넓은 곳에 뛰노는 소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는 소이겠지요?

 

참 넓게 조성되어 있지만 사진 찍기는 어렵네예...

 

물을 마시는 소의 풍경이 한가롭습니다.

망원렌즈가 없는 까닭으로...

 

그리곤 가는 길에 해미읍성을 잠시 봅니다.

오늘 서산9경 중 해미읍성, 삼존불상, 개심사, 한우목장 4경을 봤구요,

다음날 볼 간월암까지 5경을 볼 수 있고요,

나머지는 3개의 산과 1개의 항구인데...안과 변산반도의 항구를 보기에 생략!

 

읍성은 산성과는 조금 다릅니다.

산성의 제1목적이 전투 방어용이라면

읍성은 행정 구역용입니다.

따라서 예전에는 읍성은 곳곳에 있었겠지요!

많이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읍성이 요기입니다.

날씨가 요때는 너무 좋습니다.

요때가 6시 반을 조금 지났습니다.

저녁 먹으러 만대항까지 고고!

 

 

가는 길에 일몰도 봅니다.'사실 만대항에서 일몰을 볼 예정이었는데...

간만에 서해 일몰을 찍으려 했었는데....

시간이 허락지 않네요!

 

논 사이로 반영이 그래도 좋습니다!

 

드뎌 꾸지나무골에 도착!

숙소를 잡아둔 곳입니다.

 

꾸지나무골해수욕장입니다.

텐트 치고 노는 사람도 있네요.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 곁가지가 많이 나오는 만대항의 만대수산, 운영수산이냐?

인정이 있고 맑은탕이 좋은 항포구횟집이냐 갈등하다

그냥 찾기 쉬운 이 집으로 옵니다.

이원반도 톡 튀어나온 제일 끝입니다.

 

요때가 딱 8시입니다.

배가 고플 때가 되었지요?

 

도착하자말자 이 곳 소주 한 병 시켜서 말아 먹습니다. ㅋㅋ

 

메인 회 나오기 전의 모습

정말 많지요?

접시 하나하나 신경 쓴 것이 고맙네요!

대충 중요한 것만 보면말린 우럭구이, 생낙지 탕탕!, 모듬 해물, 고동, 간재미무침 정도

 

농어 2키로짜리 시킵니다.

이것저것 모듬은 싫고 그래도 날 더워졌으니 농어가 젤 나은 것 같습니다.

2키로 정도이면 까지메기는 아니니 아마 먹을 만할 것으로 예상!

본래는 12만원이나 부산에서 왔다고 D.C하여 10만원!

회 양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옥돌 위에 올려두어서 좀 지나니 오히려 더 쫄갓합디더!

 

탕도 일부러 맑은탕으로 부탁했습니다.

이쪽 동네는 맑은 탕엔 꼭 미역을 넣네요.

첨 가져온 것을 한 10분 더 끓이니 진한 맛을 냅디더!

속이 확 풀립니다!

 

한 시간 정도 만찬을 즐기고 다시 꾸지골로 갑니다.

내일 솔향기길 1코스 약 10키로, 꾸지골에서 만대항까지 오전에 걷기로 합니다.

만대항에서 이 꾸지골까지는 무료로 셔틀해 준다고 하네요.

저녁에 회 먹었다고...

좋은 시스템입니다.

 

그라곤 뜨겁지 않은 밤을 보냈습니다.

 

내일 일출을 기대하며...

알람은 새벽 4시에 맞춰 둡니다.

 

1편은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다음편부터는 사진 위주로...

마눌보다 먼저 올려야 덜 쪽팔리기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