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 본인, 글 : 옆지기
10월 22일 아침 역시 전국적인 '비'라는 일기예보가 있어 아침에 일어나니 구름이 잔뜩 낀 심상찮은 날씨였습니다. 그래도 비는 오지 않기에, 엊저녁 마련해 둔 빵과 잼,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었습니다.
출발하기 전, <란팬션>의 자랑이자 심벌인 난을 가꾸고 재배하는 온실 구경을 잠시했습니다.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태왁'이란 일종의 뒤웅박을 바위 삼아 난을 붙인 모습입니다.
온갖 정성을 들여 그야말로 자식 키우듯이 가꾸시는 모습이 난 하나하나에서 느껴졌습니다. 아침부터 기분 좋은 에너지를 얻어서 나섭니다. 출발하려고 하자,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더니 곧 세찬 바람까지 동반합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을 가기 위해 나서는 길이 어쩐지 심상치가 않습니다.
<거문오름>으로 가는 97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한 무리의 소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제주의 유명한 조랑말인가 했더니, 자세히 보니 소떼였어요~~
대관령 부근의 목장 말고, 소들이 이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은 참 오랜만이었답니다. 밀집 사육을 하지 않고, 마음대로 방목해서 키우는 저런 소들이야말로, 행복한 고기를 우리 식탁에 올려주는 질좋은 한우가 되지 싶어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떠납니다.
결국엔 <거문오름>을 오르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송당리 본향당을 찾았습니다. 첫날 찾았던 와흘 본향당의 거대한 팽나무 두 그루에 비해 본향당의 원조인 송당 본향당의 신목은 그렇게 크지도 귀기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비바람 치는 본향당 앞에서, 역시 황금향 두 알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잠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돌아나왔습니다.
역시 볼거리는 와흘 본향당의 신목에 무수히 매여있던 소망이 적힌 소지종이들과 물색 옷감들이었답니다.ㅎㅎ <거문오름>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원시적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하루에 300명만 예약자에 한해 들여 보냅니다. 이 날은 그 전날에 수학여행을 온 혜화여고 학생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예약이 된 상태라 특별히 인맥을 통해 혜화여고 학생 인솔 교사단에 명단을 올려 함께 들어갈 수 있게 손을 써 두었습니다만, 그 입장 시간이 단체는 한 시간 앞인 '9시'란 사항을 우리에게 전해주지 않아, 평소처럼 '10시'에 도착한 우리는 그만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 돌아서고 말았습니다.ㅠㅠ 다음에 또 와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겼지요~~ 살아가는 일도 알고 보면, 이런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늘 느낍니다.ㅎㅎㅎ
송당 본향당에서 동쪽으로 달려 성산 일출봉 앞에 왔습니다. 비바람 치는 바닷가에 그래도 낚시 하는 분들이 몇 보입니다. 영주십경(瀛州十景)의 으뜸인 성산일출이 시작되는 곳이고 올레길의 출발점인 제 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자 제주의 중요한 상징인 일출봉은 원래 화산 폭팔로 생긴 섬이었다가 중간에 자갈과 모래가 쌓이면서 제주도와 연결되어 육지처럼 되었답니다.
1132번 해안도로를 타고 오다가 성산읍에서 좀 외진 길을 따라 삼달리 쪽으로 오면 <김영갑 갤러리>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풍광에 반해버린 한 젊은 사나이가 평생을 제주의 풍경과 용눈이 오름을 찍다가 루게릭병에 걸려 마흔아홉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진 작업을 하던 곳입니다.
폐교가 된 삼달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개인 작업실과 전시실로 만든 곳입니다.
2005년에 주인은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의 제자들과 그를 추모하는 모임에서 갤러리를 가꾸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학교였다는 표식만 남아 있는 곳에는 제 필 때를 알아 꽃을 피우고 있는 털머위가 위로의 의미인 양 노란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루게릭병에 걸린 모리 교수님을 제자인 미치 엘봄이 매주 화요일 찾아가서 14번의 인생 강의를 듣게 되고 마침내 종강의 날은 교수님의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그의 졸업 논문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의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저서가 되었다는 이야기~~
입장료 3천 원을 주고 들어가서 잠시 구경한다는 것이 거의 70분을 보내고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제주를 향한 사랑과 열정이 감동스러워서 눈물 찔끔거리면서 동영상을 다 보고 나왔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 중 중요한 것만 담아놓은 2013년 달력도 하나 사서 나왔습니다.
(저 끝이 무인 카페입니다, 각자 차 타서마시고 적혀있는 가격표대로 돈을 넣으면 됩니다.) 모든 근육이 서서히 하나씩 마비되어 가는 불치의 병 루게릭은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김명민의 연기로 보여주듯이 나중에는 손가락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고 고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으며 삼키는 근육마저 움직일 수 없으면 목에 관을 꽂아 유동식만 넣어주는 단계가 됩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정신은 멀쩡한 데 산 채로 미이라가 되어가는 것이지요. 참 고통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면 모리 교수님은 명상 수업을 많이 하셔서 거의 높은 수행자의 경지에 올라 있었습니다. 대소변도 물론 자신의 의지대로 처리할 수 없는 단계가 되면 제정신 가진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태지만 그 모든 순간을 스스로 즐기며 감사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마치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가 다시 점점 퇴행을 하여 아이로 되어가는 마음을 받아들이고 엄마의 손길처럼 닦아주고, 씻어주는 것을 자연스럽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세찬 비바람이 불었다가, 그쳤다가, 잠시 햇살이 났다가 온갖 변덕을 부리며 마당을 정신없이 흔들지만 제법 규모가 큰 마당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몸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을 가끔 실감합니다. 그 작은 몸 속에 무슨 병들이 그렇게도 많이 숨어 있는 것인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병들을 생각하다가 제주의 저 돌덩어리들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는 병의 이름들이 더 많은 것인지, 더듬어보다 피식 혼자서 웃기도 합니다.
이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처럼 굽이굽이 우리들의 삶도 예기치 못한 복병들을 만나고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들의 연속입니다. 이제 두 사람이 만나 25년 세월 울고 웃다가 보니 이력이 생기고 경력이 쌓여서, 나름대로 남아있는 세월을 마름질하고 계획하다가, 또 하나의 큰 사고를 칠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또 밥 팔아 똥 사 먹을 고생이라며 은근히 만류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이 하루 세 끼 먹는 것이 변함없다면, 스트레스 속에서 쇠고기를 먹는 것 보다는 행복한 시레기죽을 먹고 싶은 것이 우리 부부의 결론입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행복한 천직이라고 늘 자부하던 옆지기가 몇 년 전부터 학교를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가르치는 행복한 일 보다는, 하기 싫고 스트레스 쌓이는 잡무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하는 적반하장의 현실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적응하기가 싫다는 것이지요.
주례인지 사회자인지 헛갈린다고 얘기하던 젊은 나이 때부터 옆지기가 주례를 서서 짝을 지워 준 제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심지어 유명 대학병원의 의사를 하는 제자까지 병원장이나 대학의 많은 교수님들을 제쳐두고 고등학교 교사인 옆지기를 찾아와 주례를 부탁하는 것은 그만큼 그 제자의 인생에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는 옆지기를 존경합니다. 그렇게 결혼한 제자들이 아이들 낳아 그 아이들이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들들도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 데리고 언제든지 찾아올 그런 편한 외갓집 같은 <체험학교>를 하나 외딴 시골에 열려고 합니다. 시골살이가 생각처럼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도 미리 각오합니다. 하지만, 아직 조금의 힘이 남아있는 시기에 우리의 인생 2막을 시작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표선면의 바닷길로 빠져서 한참을 가다보니 오후 2시가 넘은 시간, 배가 고팠습니다~~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 안에 위치한 적당한 식당을 하나 발견했답니다. <당케식당>이란 이름이 특이해서 물었더니 이 동네 지명이라고 합니다.
안주인이 제주 토박이고, 바깥 양반은 경상도 사나이인 이 집, 주인이 적극 추천하는 돼지 생오겹을 주문했습니다.
털이 숭숭 보이는 껍데기채로 정말 두껍게 썰어 나온 고기는 상당히 질이 좋고 맛도 좋았습니다. 멸치 젓갈을 끓여서 찍어 먹으라고 하네요.
부글부글 맛나게 끓여나온 된장찌개도 넉넉합니다.
작은 전복 두 개는 덤으로 주셨답니다.ㅎㅎㅎ 점심 든든하게 배 불리 먹고, 이제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철을 잊어버리고 핀 철부지 수선화 몇 송이를 보았습니다. 문득 법정스님께서 지인이 보내와서 뜨락에 심었다는 제주의 수선화 생각이 났습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모습 같습니다.
제주민속촌 인근의 표선바다를 뒤로 하고 이제 제주시로 일단 돌아가기로 합니다.
구실잣밤나무가 가로수로 서 있는 길을 달리는 시간에 엄청난 폭우가 양동이로 들여 붓듯이 퍼붓습니다.
뿌연 물안개로 시야가 흐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었습니다. 급할 일도 없는 시간, 잠시 쉬어가는 여유도 좋지 싶습니다. 차 안에서 과일 한 쪽 나눠 먹으며 지나온 일정과 돌아갈 일을 의논하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퍼붓던 비가 잠시 주춤해지자, 삼양동 검은 모래 해변으로 왔습니다. 밀물이 차 오른 시간이라, 모래의 폭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비바람 탓에 인적이 없는 한적한 검은 모래벌을 감상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삼양동 선사유적지와 삼성혈이 있었지만, 두루 다니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이 검은 모래밭에서 제주와 이별을 고하기로 했습니다. 젊은 날에는 14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전위무용가 홍신자씨가, 이 년 전에는 또 한국문화에 반해 한국에 정착한 프랑스인과 재혼을 하면서 제주의 <돌문화공원>을 하나의 공연장으로 만들기도 했지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홍신자씨가 하와이 군도의 어느 섬, 밀림 속에 마련한 연습실 겸 휴양소에서 잠시 쉴 때에 달 밝은 밤 Black sand beach에 앉아 자연의 정기를 받으면 검은 모래 해변이 귀기스럽고도 영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한 그 말이 저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비바람이 세차서 사람들은 거의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주의 한 생활방식이라 그런 지 불편해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지도 않습니다.ㅎㅎ
해변의 야자수 가로수와도 이별을 하며 빌린 자동차를 반납하러 갑니다. 복잡한 제주공항을 몇 바퀴째 돌다가 겨우 차를 반납하고, 비행기가 뜨지 않을까봐 걱정을 했지만, 무사히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산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제주에서 보다 더 싱싱하고 푸짐하고 값싼 해물탕을 먹었습니다. 제주의 청정 바다에서 나는 그 많은 해물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제일 비싼 호텔의 뷔페에서도 그렇게 싱싱한 해물은 없었습니다. 참 이상하고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지요~~ㅋㅋㅋ
해물탕에 부산의 소주 한 잔 곁들이며 잘 다녀온 은혼 여행의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하루하루 남은 날들을, 욕심 버리고 홀가분하게 여유를 즐기며 또 잘 살아가자고 서로에게 위안을 건네며 행복했던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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