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 본인, 글 : 옆지기
10월 21일 새벽, 숙소에서 내려다 보니
쾌청한 일출을 찍지 못할 듯하여,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습니다.
제주공항 근처라서 비행기 소리가 좀 시끄럽습니다.
아침 8시경, 숙소에서 짐을 정리해서 나섭니다.
아침 식사가 되는 곳이 근처에 없어
서부두 수산 시장 쪽으로 아침 먹으러 갔습니다.
우리가 잔 숙소입니다.
수산 시장 이층의 <물금>이란 식당도,
제주 사람들이 추천하는 괜찮은 맛집이라기에 들어 갑니다.
메뉴는 나중에 참고하라고....
저는 갈치국 한 그릇~!
마눌은는 보기만 해도 비려 보인다 하는데, "울 옆지기는
참말로 생선을 즐기는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더ㅎㅎㅎ
맛을 물어보니, 달짝하면서도 청량고추를 넣어
칼칼한 맛을 주어 시원하게 잘 먹었습니다. 생물은 아니네요... 섭섭하게....
집사람은 해물뚝배기 하나~!
이 맛은 그냥 시중에 파는 된장을 풀어 끓인
보통의 맛으로 특별한 것은 없었답니다.
바지락의 해감을 충분히 하지 않아
모래가 많이 씹히는 바람에, 그냥 국물만 먹었습니다.
식당 이름에 뜻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 식당 사장님 고향이 경남 물금이랍니다~~
ㅎㅎㅎ 집사람 외가가 있던 곳이라 반가워했답니다.
아침 든든히 먹고, 오늘은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떠납니다.
제주의 가을에는 외딴 길 어디서나 쉽게 만나는 억새 군락이 많습니다.
제주시에서 중문으로 넘어가는 1139번 도로를 타고
어리목 입구를 지나 영실기암쪽으로 가는 길~~
억새들의 군무에 잠시 과일 한 쪽 먹으며 감상을 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합니다.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옛날 같으면 할매 소리 들을 아줌마가...ㅋㅋ
10시가 넘어 도착한 영실기암쪽의 도로는 사진처럼
거의 주차장이 되어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크~~윽~~아침에 너무도 여유를 부리다가...ㅠㅠ
매표소를 통과해 영실의 기암들이 보이는 휴게소까지
거의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표소부터 영실휴게소 앞의 주차장까지 약 2.5Km의 길은
철저하게 통제가 되어 주차장의 자리가 비면
매표소로 무선연락을 하여 차량을 올려보내는 방식으로 운영을 했습니다.
특히 일요일이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리라는 것도 모르고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보내다가,
길에서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휴게소 앞 주차장에 차를 겨우 세우고 건너편 산세를 마주보니
길에서 허비한 시간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달아났습니다.
우~~와~~ 캬~~아~~
감탄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라산을 오르려면, 적어도 새벽 6시에는 기상해서
아침 빨리 먹고, 도시락 챙겨 8시에는 등반을 시작해야 합니다.
다음엔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터키의 카파토키아에서 화산석이 풍화되어 만들어내던
버섯바위의 신비로움만큼이나
기기묘묘한 바위의 모양들이 비와 바람에 깎여 만든 형상들이
한참을 넋을 놓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12시가 다 되었기에
일단 요기를 하고 올라가려고 휴게소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오백장군 비빔밥 한 그릇에 15,000원입니다만,
가격에 실망스럽지 않은 비빔밥을 받았습니다.
볶은 전복을 가운데 얹고, 온갖 나물들이 맛깔스레 둘러져 있었고
밤, 대추, 더덕, 도라지, 은행알에 인삼까지
맛나고 향기로운 고명들이 고급스레 얹혀 나왔고
맛도 아주 훌륭했고 양도 넉넉했습니다~~
쓱~~쓱~~ 비벼 둘이서 한 그릇 나눠 먹고
하이파이브 한 번 하면서 올라갑니다.
가을에는 영실에서 2시 이후에는 못 올라 갑니다.
시간표 잘 확인하셔야 합니다.
해발 1280m에서 출발입니다.
원래 실(室)이란 이름은 계곡을 말하는 것으로
옛 기록에는 영곡(靈谷)이라고도 했답니다.
사계절 언제 가더라도, 신령스러울만큼 아름다운 비경이 펼쳐지는
그런 계곡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경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초입의 나무들은 제법 단풍이 들었고,
아래로는 낮은 조릿대 군락이 조화를 이루면서 펼쳐집니다.
한동안 끝없는 나무 계단을 올라야합니다.
멀리 병풍을 둘러 놓은 듯한 오백장군봉이 보입니다.
산을 오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가끔,
산을 왜 오르느냐고 묻습니다만,
그 답은 산을 올라봐야 스스로 찾을 수 있습니다.
더러 사람들은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합니다만,
저는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기암괴석과 절경을 자랑하는 산일수록
사전 지식을 익히고,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야
돌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유연하게 해결해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경치에만 홀려 있다가는, 더러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생존의 모든 필수품이 들어있는 베낭을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매순간 긴장과 여유 사이를 왕래하면서
더러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거나, 미끄러지거나
혹은 넘어져 잠시 쉬었다 다시 일어나면서
정신적 재무장을 하면 더 야무지고 단단해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래쪽에서 보았던 기이한 바위들이
점차 또렷한 모습으로 하나씩 시선에 들어옵니다.
하나하나가 사람 같기도 하고, 동물같기도 하고
또 다른 형상 같기도 합니다.
영실로 올라가는 코스에는 유난히 까마귀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뭐 먹을 것을 줄까 싶은 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따라 다닙니다.
아이 울음을 흉내내며 자꾸 보채는 느낌도 듭니다.
해발 1,400까지 올라와서 잠시 쉬었습니다.
세월 참 좋지요~~
사진을 찍어 카카오스토리로 올리니, 금방 지인들의 반응이 옵다고 하네요.ㅎㅎㅎ
아래쪽에서 까마득히 올려다 보았던 오백장군봉이
눈높이로 보일 만큼 올라왔습니다.
몇 년 전 설악산 대청봉을 올라갈 때도 그랬습니다.
천불동 계곡으로 올라, 희운각대피소 가까이 갔을 때쯤
몸은 기진맥진 지쳤지만, 산의 능선과 봉우리들이
내 눈높이로 왔다는 사실이 어찌나 경이롭고 신이 나던지요~~
그 즐거움을 말로 표현하기는 좀 어렵습니다.ㅎㅎ
한여름에 소나기가 쏟아지고 나면,
마주 보이는 바위틈새로 순간적인 폭포가 생겨
폭포는 떨어지고 자욱한 물안개가 절벽을 타고 오르는
황홀한 절경이 펼쳐진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올라갈수록 드센 바람 탓으로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점점 몸을 낮춥니다.
자연이 덤으로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랍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인 서울대 김난도 교수님은
천 번쯤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많이 아파하고 많이 흔들려보라고 얘기하지만,
예전에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똑바로 앞만 보고 가라고들 했습니다.
흔들리거나, 옆을 보거나, 아파하면
배가 불러서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한다고 흉을 보던 시절이었지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정상적인 쉬운 길을 걷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공대를 다니다가 집어치우고 처음부터 왔으면 쉽게 올 대학을
돌아서 결국 왔고....
집사람도 다니던 은행을 치우고 돈 안되는 우리 과로 다시 들어온다고 했을 때...
아무리 그래도 **대인데...
몇 년 놀고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ㅋㅋ
너무나 쉽게(?) 입학하였기에
복학한 저는 그때부터 코가 끼엿습니다(?) ㅋㅋ
선 한 번 보지 못하고 바로 결혼~
그것도 집사람 졸업도 하기 전에 데려왔으니....
첨부터 우리 힘으로 살겠다고 큰소리치고 시작했지만,
세상은 그리 녹녹하지도 않았고, 또 2사람이 모두 자기 주장이 강했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너거 아직 안 찢어졌냐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씩 함께 걷는 법을 깨우쳐 나갔고
부부란 결코 상대방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한곳을 함께 보는 것이란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기 얼굴에 책임질 나이가 되다보니
조금은 평온한 얼굴이 된 것도 같습니다.
아직 1500미터이니 좀더 가야겟습니다.
역시 우리도 좀더 올라가야겠지요!
해발 1,500m를 넘어서니, 이제 우리는
병풍바위(오백장군봉)의 뒤통수쪽으로 올라 왔습니다.
오~호~~ 병풍바위 뒤를 올라서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완만한 평지가 이어지면서 구름과 눈높이를 같이하는
동화 속 세상같은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산은 이래서 올라와봐야 알고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구상나무 군락지가 나타납니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한라산 해발 1,500~1,800m 사이에만 집중 서식한다는 구상나무~!
은빛 몸매를 자랑하며 귀티나게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죽어 고사목이 되어서도 아름답게 보이는 나무랍니다.
하늘빛과 어우러진 모습은 거의 예술작품에 가깝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올라온 길이 까마득합니다.
완만한 구릉 하나하나가 다 제주의 '오름'입니다.
까마귀 녀석들이 여전히 따라다닙니다.
해발 1,600m를 넘어서니 추워지기 시작합니다.
잘 생긴 구상나무 고사목과 손을 잡아 봅니다.
흑백이 주는 묘한 아름다움~!
멀리 구멍 뚫린 돌이 보입니다.
1132번 해안일주도로에 있는 '고망난 돌'(제주 비경 31의 하나)이 생각납니다.
병풍바위의 뒤통수를 조심스레 지나갑니다.
처음엔 꽃인가 했는데, 꽃이 아니라 열매네요~~
요렇게 생긴 녀석~~
접사로 찍으니 씨가 세 알씩 박혀있는
이 열매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 가르쳐주세요~!
꽃처럼 색상도 곱고 어여쁩니다.
산수국도 시들어 형태만 남아 있습니다.
조릿대는 올라갈수록 점점 몸을 낮추어
아예 땅에 바싹 붙어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다들 살아가는 처세술이 있습니다.
말라붙은 단풍들도 조금 보이는 길을 지나고,
둘이서는 못 가는 좁은 숲길을 한참 걸어 갔습니다.
우~~와~~ 그 길 끝에 문득 모습을 드러내는 백록담입니다.
저 아래쪽에서는 보이지도 않지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광이
이국이 낯선 모습처럼 펼쳐집니다.
하늘과 구름도 시시때때로 모습을 달리하는 변화무쌍함~!
봄이면 저 완만한 구릉의 능선 사이로 불타는 듯한 진달래랑 철쭉들이
넓은 치마폭에 수를 놓듯 펼쳐진다고 합니다.
봄이면 진달래가 꽃구름을 이루는 선작지왓 벌판 너머에
백록담 모습이 가마솥 같아서 부악(釜岳) 이라고도 부르고
머리털이 없는 모습이라 두무악(頭無岳)이라고도 부르는
신비한 영봉을 느닷없이 만나는 것은 참 놀라운 감동입니다.
더욱 몸을 낮추어 거의 신발만큼 낮은 조릿대들이
구름 덩이 위로 떠 있는 듯한 환상적인 풍경입니다.
문득 조선시대의 낭만파 시인이자 풍운아였던
백호 임제 선생의 시구가 생각납니다.
.
.
하계에선 흰 구름 높은 줄만 알아서
구름 위에 사람들 노니는 줄 모르지.
...<백운(白雲)편에서>
이제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오늘 여정의 끝이지 싶습니다.
거대한 분화구가 성큼 눈 앞에 다가 옵니다.
윗세오름 대피소는 어리목에서 올라온 길과
영실에서 올라온 길이 만나는 자리에 있습니다.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밤에는 하루 자고 갈 수도 있는 곳입니다.
배는 안 고팠지만, 라면 국물 먹고 싶어
육계장 라면 하나 시켜 둘이 나눠 먹었습니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아득했습니다.
대피소 부근의 경관입니다.
다음에 올 때는 한라산 백록담 꼭대기까지 꼭 가보리라~~
다짐을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내려옵니다.
저도 백록담은 1번이가, 2번인가밖에 못 와봤는데....
마눌은 조께 섭섭한 모양입니더!
인증 샷 한장 찍고....
무지하게 바람 불고 추워서 있는 대로 다 껴입었습니다.
모처럼 나도 한 장
고집 센 두 사람이 만나서 25년 세월 함께 어우러져 산다고
애 많이 쓰고, 성질도 많이 죽였습니다.ㅋㅋㅋ
백호 선생처럼 구름 위를 둥둥 떠 다니다가 내려왔습니다.
영실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오후 5시쯤 되었습니다.
아침에 북새통을 이루던 차들도 거의 빠져나가고
우리도 느긋하게 내려왔습니다.
숙소 근처의 해수온천으로 가려고 서둘러 가는 중에
길가에서 일몰을 만났습니다.
두터운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찍느라고 애를 쓰는 사이에
집사람은 떨어지는 해와 코스모스들을 감상하며 기다립니다.
주인장이 직접 키우는 난이 큰 온실 가득 있는 집이라
<란팬션>이란 이름을 가진 숙소에 여장을 풀어놓고
바로 걸어가면 있는 해수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왔습니다.
저녁은 제주 라마다 호텔 부페로 먹었습니다.
각자 취향대로 달콤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편안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7,700원짜리 소주....
국내에서도 소주 비싸구나...ㅋㅋ
가재구이와 LA갈비를 즉석구이로 먹었는데
젤 맛이 나았지 싶네요.
후식을 먹으며, 낼 아침으로 먹을 빵 몇 가지와
잼 등을 종이 봉지에 넣어 왔답니다.
둘째 날 이야기를 접으며 마지막 날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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