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새벽 6시
인도에 와서 바라나시를 보지 않으면
인도를 다녀가지 않은 것이라고 했던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받아들이면서,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로 향했다.
바라나시(Varanasi)란 ‘영(靈)적인 빛으로 넘친 도시’란 뜻으로
카시(Kadhi)라고도 한다.
갠지스로 가는 길은 새벽부터 활기에 넘쳤다.
화로에 불을 피우고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
길거리 음식점의 모습~!
새벽 5시에 모닝콜을 약속했건만, 어쩐 일인지
5시 50분에야 모닝콜이 울렸고, 모두들
눈곱만 떼고, 허겁지겁 로비로 모여 출발했으나
사뭇 모두들 표정이 진지하기만 했다.
새벽녘의 찬 강바람을 맞으러 가는 길엔
따뜻한 짜이 한 잔이 제격이건만, 우리 일행은
길거리 음식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아 눈으로만 요기했다.
(사실은 짜이 주전자를 보고 먹을 맛이 싹 달아났다.ㅎㅎ)
그러나 우리보다 더 새벽에 일어나, 동냥 깡통을 놓고
‘박시시’(적선하세요)를 외치는 수많은 노인과 병자와 아이들~!
이들에게 적선하라고 동전 바꿔주는 가게도 불을 밝혀두고 있었다.
동전 바꿔 하나씩 던질 여유가 없어 그냥 지나치는 걸음이 무거웠다.
노 젓는 작은 배에 일행들이 모두 올랐다.
조그만 꽃등(다이)을 파는 소녀도 함께 올랐다.
2월의 첫날인 탓이었을까?
우리는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 3을 만났다.
왼쪽에 담요를 둘러쓰고 있는 한 무리의 사두(수행자)들을 보시라!
맨 우측의 등만 보이고, 홀랑 벗고 있는 사두가
우리가 뱃머리를 돌려 상류로 올라가려는 순간,
그야말로, 온몸에 회칠을 한 듯한 흰 분을 잔뜩 바른 채 일어서더니
한쪽 다리를 번쩍 들고, 조그만 라디오 하나를
자신의 고추에 매어달려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게 아닌가~!
일행 모두는 아연실색, 놀라움과 당황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순간 모두들 웃음을 흘리고 말았는데...
이들이 몸에 칠한 분(粉)은 바로 시체를 화장한 재이며
이러한 사두들은 거의 ‘나가사’족의 사두들이며
극도의 무소유를 행하는 극단적 수행자들로
옷도 걸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시체의 재를 몸에 바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위선을 떨며, 윤리와 관습의 범주에 매여
두꺼운 껍질을 두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날리는
참으로 간단명료한 야유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순간
웃음이 싸~악 가시며, 가슴 속에 깊은 숙연함이 솟아올라
그분을 향해 두 손 모으며 합장 공경의 뜻을 보냈다.
(차마 그 사진은 우리 누구도 찍을 수가 없었다)
강의 상류로 올라갈수록, 아침 일출과 더불어
정화 의식을 행하는 힌두교도들을 많이 만났다.
정화 의식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동쪽의 태양을 향해 두 손 모으고, 시바의 신에게 기도 드리며
머리끝까지 세 번 물에 담그고 만트라를 외우고 신들의 이름을 외우며
그들의 스승들 이름까지 다 읊조리면 끝난다.
그리고 이렇게 발뒤꿈치의 떼까지 긁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ㅎㅎ
그러나 강에서 행하는 이런 정화 의식으로도 씻을 수 없는 5대 범죄가 있다.
곧 브라만을 살생하거나, 낙태, 금을 훔친 일, 음주, 스승의 아내와 불륜이다.
우리는 이 날 아침, 참으로 많은 남정네의 고추들을 구경했다. ㅋㅋㅋ
‘다이’라 불리는 꽃등을 불 붙여 강물에 띄워 보내며
모두들 소망을 함께 띄워 보냈지만, 나는 갠지스에 소망을 비는
모든 이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인도인들의 82%에 달한다는 힌두교도들은
이곳에 와서 삶을 마감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이 강에 자신의 시체를 태워 띄워 보내야만
목셔(Moksha - 탄생과 죽음의 순환에서 벗어남, 즉 불교의 해탈)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갠지스는 힌두교도들의 성지인 동시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 인도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성지이기도 한 까닭에
연간 백만이 넘는 순례객이 다녀가는 인도 최대의 성지다.
강의 상류로 올라갈수록, 귀족층이나 옛 왕족들의
개인 가트(계단식 목욕장)와 별장이 줄지어 있었다.
아래쪽의 대중 가트와는 격조와 품위가 달랐다.
저렇게 높다랗게 기단을 쌓아서 건물을 올리는 이유는
우기가 되거나, 홍수가 나면,
거의 건물 입구까지 물이 차기 때문이란다.
더 상류로 올라가자, 단체 세탁장이 전개된다.
세탁업을 평생 하는 이 사람들은 대체로 불가촉천민들이다.
특수 자연 가루비누를 사용해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단다.
그러나, 우리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시체를 태워 떠내려 보낸 물,
갠지스 주변에 살고 있는 약 3억이 넘는 인구들의
생활 하수와 산업 하수가 쏟아져 들어오는 물,
쓰레기도 떠내려 오고, 꽃과 꽃등과, 짚, 타다 남은 나무토막,
그리고 빨래해서 내려 보낸 물속에 뛰어들어
목욕하고, 이빨도 닦고, 심지어 마시고
물통에 담아서 성수라고 가져가기도 하는 사람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이들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뱃머리를 다시 돌리는 순간
달처럼 둥글고, 눈부시지도 않고, 아름다운
주황빛 해가 동실 그림처럼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했다.
눈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언정, 그것은 참으로 장엄했다.
갠지스 강의 정화 작용에 대해서는,
어떤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란다.
다만 아주 강력한 정화 작용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들이 밀접하게 자생하는 까닭에
어떤 오염된 물질들이 떠내려 와도, 순식간에
정화시켜 내는 특이한 성질을 지닌 강이라고 밖에는...
갠지스는 아마도 그들의 신들이
인도인들을 위해 주신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화장터는 촬영이 금지되어
몇 군데서 불길이 치솟으며,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건만
배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와 주변을 스쳐가면서
화장을 위해 쌓아놓은 장작더미만을 한 장 찍고 지나쳤다.
모든 사람들이 죽으면 화장을 해서 그 재를
갠지스에 버려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네 부류의 사람들 (수행자, 2세 이하의 영아, 처녀, 불구자)은
화장하지 않고 그냥 띄워도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더러 강물에, 사람 시체들이 둥둥 떠내려왔고
또는 장작이 모자라(가난한 사람들은 충분한 장작을 사지 못해서)
덜 탄 시체들도 떠내려왔기에, 인도 당국에서는
이 시체를 뜯어 먹으라고 거북이 3만 마리를 방생했으나
지금은 단 한 마리도 눈에 띠지 않았다.
갠지스와 연결된 바라나시의 뒷골목 미로로 들어섰다.
발 밑을 잘 보고 걷지 않으면, 오물을 밟기 쉽상이고
잘못 한 눈을 팔면 일행들을 놓쳐버린다는 미로에서는
모두들 둘씩 짝을 지어 긴장한 눈빛을 잃지 않았다.
미로의 한 구석에 위치하는 황금 사원
(금으로 덧칠한 지붕 때문에)
힌두교도 외엔 출입 금지라
지나가는 길에 입구의 사진만 한 장
이 사원 뒷편에 있는 회교 사원은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 황제가 힌두 사원을 허물어
그 자리에 세운 것으로, 지금도 두 교도들 간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다툼이 존재하고 있는 중이라
골목 곳곳에 무장 군인들이 버티고 있기도 했다.
고대 도시 - 고델리아로 부터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꼬불꼬불 한없이 연결된 골목의 좁은 길로
들것에 실린 시체들이 가끔 들어오고 있었고
온갖 오물이 버려져 있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크고 작은 사원들이 신들에게 공양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8시가 넘어서면 이 골목이 꽉 차도록 복잡해진다기에
서둘러 우리 일행은 골목을 빠져 나왔다.
발 아래와 주변을 열심히 살피느라, 결국
오물 한 덩이를 밟고 말았던 아침~! ㅋ
희안하게 복잡한 힌두 문자 사이에
버젓한 한글 안내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금강경>에 수없이 등장하는 '황하의 모래와도 같은...'
그 '황하'가 바로 '갠지스'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 갠지스
아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해 존재하는 곳~!
그리고 인도에 와서 바라나시를 보지 않으면
인도를 보지 않은 것이란 말의 참뜻이
어렴풋 가슴 가운데로 서려드는 아침이었다.
응축된 삶의 많은 부분을
짧은 시간에 만나고 받아들이고 흘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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