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넷째 주 토요일, 용두산 무료 급식을 담당하는 날입니다.
12월에는 마침 성탄절 아침이었습니다.
그날도 날씨가 어찌나 춥고 매섭던지...
하지만 춥다고 안 먹습니까?
추울수록 오갈데 없는 노숙자들의 빈속은 더 춥고 떨리지 싶어
아침 일찍 특별히 후원 들어온 장갑과 양말을 챙겨 나섭니다.
일손이 부족할 듯해 울집 거사 라맹님을 대동합니다.
용두산 무료 급식소는
여기 이 탑을 마주보고 선 자리에서 왼쪽 끝으로
조그만 '정수사'란 절이 있는데
이 절 아래쪽 반지하실입니다.
무료 급식소 안에서는
장갑이랑 양말 한 켤레씩, 그리고 귤 하나씩을
한 봉지 안에 담아서 쌓아 둡니다.
평일에는 약 300~400명, 그리고 주말에는 약 500~600명의
노인들이나 노숙자들, 그리고 용두산 일대에서
사진을 찍거나 일을 하시는 분들이 점심을 드시러 옵니다.
영하로 뚝 떨어진 온도에도
실내에는 난방기 하나가 없어서
모두들 모자에 장갑에 중무장을 하고 일을 합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추운 날에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요. 이렇게 생긴 장갑과 양말, 그리고 귤 하나씩을 나누었습니다.
한편 주방에서는 비빔밥 재료들을 만드느라 부산합니다. 어느 회원이 울산 근교의 비닐하우스에서 직접 키웠다는 배추를 승용차 가득 싣고와서 삶아 건집니다. 거의가 다 노인들이고, 치아가 부실해서 모든 부식들은 입 안에서 그냥 삼켜도 될 정도로 장만합니다.
유리창 너머로 제 얼굴도 보이네요.ㅎㅎㅎ
이날 사진 담당도 라맹 거사가 했습니다.
늘 고생하는 모습들을 한번도 사진에 담아 올리지 못했네요.
옆에서는 대형 솥에 무나물을 볶는 중이고
저는 국거리 다싯물 내고 나온 다시마들을 총총 썰어서
비빔밥에 얻을 고명으로 쓸 준비를 합니다.
아까 삶아 두었던 배추들도 총총 다지듯이 썰어두고...
이날 날씨가 어찌나 춥고 맵던지...
부엌문 밖으로 물줄기가 새어 나가는 즉시
얼어 붙어버려 나 다니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특히나 저는 미끄럼 공포증이 있어
나중에 급식소와 부엌을 오가며 숭늉을 떠다 나르는데
미끄러질까봐 다리에 힘을 너무 주어서
돌아올 때는 아주 오금 근육이 당길 정도였습니다.
고무장갑 안 끼고 칼질하는 손들도 나중에는 곱아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추위였답니다.
콩나물 무치는 현장입니다.
콩나물도 모두 칼질해서 잘게 자른 다음에
양념이 고루 배이도록 골고루 섞어줍니다.
다들 10년 넘게 손을 맞춘 사람들이라
봉사자들 손은 거의 자동기계 수준입니다.
무나물도 잘 볶아져서 고소한 냄새가 퍼지니다.
깨소금도 듬뿍 끼얹어 둡니다.
마지막으로 묵은 김치를 총총 썰어냅니다.
저는 그날 이 좁고 오래되고 습기찬 부엌
바닥에 온통 물이라 장화를 신지 않으면 발이 금방 젖어 버리는 곳,
그리고 날이 더워지면, 열기 앞에서
땀에 목욕을 하면서, 일을 하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누군가 돈 많은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이 시설을 현대식 부엌으로 개조를 해 주시면
그리고 급식을 하는 저 앞 식당의 내부도
좀 더 깔끔하고 쾌적하게 리모델링 해 주신다면
훨씬 위생적이고 쾌적한 급식소가 될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IMF가 터지고 이 급식소가 생겼으니
이제 거의 15년이 되었네요.
이곳에서는 매일 무료 급식을 합니다만,
급식하는 주체는 매일 바뀝니다.
워낙 많은 인원이 오고, 따라서
많은 물자와 봉사자들이 필요하다 보니
한 곳에서는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급식 주체는 교회, 절, 천도교, 순수한 봉사 단체
그리고 자갈치 상인 연합회에서도 옵니다.
매일 많은 인원의 무료 급식을 쳐내는 시설치고는
참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아침 8시 이전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해야 하기에 거의 아침도 못 먹고 옵니다. 11시경, 대충 기본적인 찬이 마련되면 봉사자들 먼저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저희도 똑같이 먹습니다. 맛이 기가 막힙니다.
아까 삶아 둔 배추 몇 포기 남겼다가
준비해 온 젓갈 얹어 쌈도 싸 먹습니다.
손은 시리지만 함께 먹는 아침이 정말 맛납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갑자기 추위도 덜하고 힘이 생깁니다.
사는 게 이런거지~ 뭐 별 것 있습니까?
다 먹고 사는 일 하나 해결하는 거지요.
김이 자욱한 부엌에서 후루룩 냠냠...
같은 그릇, 같은 수저, 같은 반찬으로
끈끈한 동지애를 느끼며 한 끼의 만찬을 나눕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밥입니다.
11시 30분 경, 이제 배식 준비 완료입니다.
비빔밥입니다. 한쪽에선 밥이 나가고
옆에선 국이 나갑니다.
급식소 안이 복잡해서 이 선물 봉지는
바깥에서 하나씩 나누어 주고 들어와서 밥을 먹는 걸로 정했습니다.
추석 이후로 갑자기 채소값이 급등하고
살기가 어려워선지 후원 금액도 줄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매달 넷째 주 금, 토에 급식을 하는
<맑고 향기롭게>부산 지부 봉사자들도 힘들어 졌습니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 적자 살림을 면하지 못합니다.
감사하게도 새해 들어
맛집의 제이엠씨님이 무료 급식소에
오십 만 원의 후원금을 보내 주셨습니다.
조금 더 좋은 식단을 짤 수 있을 듯합니다.
새해에 사업 잘 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무료급식소 입구 모습입니다.
급식 한 시간 전부터 추운 날에 이렇게 기다리는 분도 계시고
신문지에 돌 얹어서 자기 자리 찜해 놓고 가신 분도 있습니다.
세계 경제국 순위 10위에 든다는 이 나라의
그늘진 곳의 현실입니다.
급식 받으려고 줄 서 있는 모습은 찍지 않았습니다.
노숙자들도 초상권이 있기에 허락없이 찍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 급식소에도 따뜻한 햇살이 비쳐
밝고, 환하고, 일하기 편하고, 한 끼 먹는 밥이나마
따뜻하고 안락하게 먹고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과 사진을 올립니다.
새해에는 모두들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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