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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화요일 여행 마지막 날~!
엊저녁 너무 늦게 도착해 불빛도 희미하던
카트만두 국제공항 앞에서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던
네팔의 가이드 어눞 구릉 - 최민수씨
호텔로 돌아와 방 배정을 받고 씻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잠자기에 바빴던 피곤에 절었던 날을 접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제일 고급이라는
CROWN PLAZA HOTEL에서 아침을 맞았다.
잘 다듬어진 근사한 정원과, 구석구석을 차지하는
신들의 조각상과 온통 마당과 담벼락을 장식하던
화려한 꽃들과...모처럼 느긋해서 행복한 아침이었다.
9시경 아침을 먹었는데, 온갖 과일들과
여러 종류의 빵과, 구미 당기는 음식들이 있어
문득, 인도가 아니라 네팔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내다보며 배부른 아침 식사를 했다.
인도보다 못 사는 나라인데도, 뭔가가 인도보다
풍족하게 느껴지는 그런 나라가 네팔이다.
전용 버스를 타고 호텔을 나서니 순식간에 다시 풍경이 바뀐다.
한 나라의 수도라는 곳이 대부분 이런 광경이다.
거대한 현대식 광고판엔 미녀가 웃고 있고
그 아래쪽엔 온통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는 모습~!
5년 전 너무도 착했던 전왕(前王)의 일가 5명이 모두 총 맞아 죽고
그 아우인 현재의 왕이 자리를 차지했다는데...
부정부패가 너무도 심해, 마침내 반군에 의행 축출당한 시기가
바로 우리가 이곳을 떠나 인도를 여행하고 온 그 사이였다.
맨처음 네팔에서는 최고로 신성하게 여긴다는 <파슈파티나트>
황금 사원과 그 앞의 화장터를 찾아가는 길에
아주 조그맣고 환경이 열악한 어린이 학교를 지나게 되었다.
저렇게 벽도 없는 교실에 4~8명의 아이들이 앉아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표정은 참으로 진지했다.
머리에 털모자는 쓰고 있어도 모두 발은 맨발이다.
학교 발전을 위해 우리 일행의 공금으로 얼마간의 기부를 했다.
그래도 이 학교는 캄보디아 톤레샾 호수에 있던
수상 학교 아이들 보다는 환경이 좋다.
그 아이들은 필기도구나 책도 없이 그저
베니아판으로 만든 칠판에 선생님이 쓰시는 글자를
눈으로 보고 입으로 따라 하는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까...
먼저 화장터에 도착했다.
건너편에 보이는 더러운 하천 같은 것이
인도의 갠지스처럼 신성하게 여긴다는 바그마티(Baghmati)강이다.
벽돌을 쌓아서 동그랗게 튀어나온 곳이 바로 화장터인데
아침부터 벌써 몇 구의 시체들이
매캐한 연기와 냄새를 피워 올리며 태워지고 있었다.
네팔 사람들은 보름날을 신성시하여
보름날엔 화장터가 아주 복잡하다고 하나,
그날은 한산하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여기서는 가까이서만 아니라면 촬영이 허락되었다.
화장장이가 기다란 막대기로 시체가 골고루 잘 타게 하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이는 모습까지 다 보인다.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하고 노란 천에 감아서 바그마티 강에 담갔다가
장작을 사서 올리고 그 위에 시신의 머리를 북쪽으로 두게 놓는다.
그리고 상주가 시신을 돌며, 이승과 하직 인사인양
소라 고동을 길게 분 다음, 반드시 아들이
시체의 입에 불을 붙인다. (아들이 없으면 고인의 형제가)
살아생전 인간이 구업(口業)을 가장 많이 짓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입 주변에 불이 붙으면 그 다음엔 시체가 잘 타도록
온 몸에 골고루 불을 붙이고 긴 대나무로 뒤적이며 저렇게 태운다.
4~5시간이 경과하여 다 타고 나면, 화장장이는 그 시체의 뼈와
잔여물을 바그마티 강에 쓸어 넣어 버린다.
그러면 이렇게 더러운 강바닥을 삽으로 뒤적이며
이 남자들은 타버린 시신에 붙어있는 귀중품들을 주우려고
하루종일 저렇게 일을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 참으로 여러 가지란 생각을 했다.
이마에 붉은 점을 찍은 분들이, 돈을 받고
장례를 주관해주는 브라만들이다.
브라만 중에서도 서열이 높은 브라만들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황금 사원 맞은편에 줄지어 있던 스투파들~!
모두 꼭 같은 크기에 꼭 같은 모습의 시바 링가를 모셔놓고 있었다.
가운데 남근석을 올려놓고
그 주변의 둥글게 파여진 부분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이 탑들은 모두 다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의 소산이라고 한다.
‘시바 링가’라고 표현하는 이 상징물은
우주의 근원적 에너지의 상징이자, 창조 에너지의 표현이다.
네팔에 있는 힌두교 최대의 성지인 파슈파티나트 사원(황금 사원)
유네스코 지정의 세계 문화 유산이며,
‘파슈파트’란 ‘동물들의 신’이란 뜻으로 시바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사원은 힌두교도 중에서도 모태 신앙인 힌두교도만
입장이 허용되는 아주 엄격한 곳이다.
인도의 라지브 간디가 이 사원을 방문했을 때
그의 아내 소냐 간디는 이태리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힌두교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들어간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도 당연히 입장 불가이므로 강 이쪽에서
눈으로만 엄격한 사원의 모습을 건너다 볼 뿐~!
돌아 나오는 길에, 인도의 갠지스에서
돌발적인 퍼포먼스를 벌여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어 주던
시체 화장한 재를 온몸에 바른
나가 사두(나가사족의 수행자)들을 만났다.
인도에서 그 무소유의 극치를 보여주던 분위기와 달리
사진 한 장 찍으면 원달러를 외친다.
사원에서 불과 몇 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세계 최대의 티베트 불탑이라고 하는
보드나트 대탑(Bodhnath Stupa)이다.
높이 39M에 주변 둘레 거의 100M인 이 거대한 대탑은
자드지모(Jadzimo)란 천민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 공덕으로 자드지모의 아들은 8C에 티벳 불교를 확립한
왕으로 환생하였다는 설화가 전한다.
티벳 불교(라마교)의 최대 성지이기도 하니
이곳은 티벳의 승려들이 많이 참배하고 있었고
주변은 티베트인들의 집단거주지도 있었으며,
많은 선물 가게와, 향, 초, 불경을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스투파의 상단에 네 방향 모두 그려져 있는 눈은
만물을 꿰뚫어 보는 부처의 눈(All seeing eyes)
또는 ‘법안(法眼)이라고도 해석한다.
눈과 눈 사이에 물음표 모양으로 그려진 코
이것은 숫자 ‘1’의 의미로 ‘불이(不二)사상’을 뜻한다.
신비로움을 주기 위해 짧은 커튼으로 드리워진 이마 위엔
또 다른 한 개의 눈이 그려져 있는데
제 3의 눈인 이것은 카르마(종교적 이법)를 관철(觀徹)하는 눈이다.
붉은 법복을 입은 많은 티벳 승려들이
마니차(라마교 경전이 새겨진 원통)를 손으로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읊조리며 탑돌이를 하고 있었는데
거대한 탑만큼이나 음반의 큰 소리가 전체적으로 울려서
아주 경건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었다.
어렵게 구해서 올린 배경 음악이 바로 그곳에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3개 $10하던 이 음반을 많이 사오지 못한 것이 또 후회가 되었다.
이 나라 음반의 질을 믿을 수 없어서 3개만 샀는데
집에 와서 들어보니, 정말 장엄한 그곳의 분위기가 배어났다.
도반들에게 선물하면 참 좋아할 선물이었는데...
멀리서 온 듯한 참배객들이 온 몸으로 성심을 다해
오체투지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오히려 경견하게 만들었다.
넓은 광장엔 수많은 비둘기떼들이 무리지어 날아올랐고
광장을 돌아가며 자리한 가게에서는
손수 만든 화려한 빛깔들의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다.
여행이 다 끝난 여기서 비로소 나는
조각천을 이어 만든 예쁘고 화려한 모자를 하나 샀다.
단 돈 $2가 주던 행복~!ㅎㅎ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데, 우리는 또 들뜬 마음이 되어
특식이 마련되어 있는 한국 음식점으로
삼겹살 파티에 소주 한 잔 꿈꾸며 씩씩하게 들어갔다.
뜻하지 않게 여기서 등반하려고 오셨다는
소설가 박범신 선생님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한 장~!
그 연세에...에베레스트를 오르시겠다니...
집에서는 잘 먹지도 않는 냉동 삼겹살을
그것도 눈물 글썽이며, 감동에 벅차서 먹었던 기억~!
모양은 그럴듯한 된장찌개, 김치찌개
하지만 맛은 영~~ 아니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 맛이 그렇게 중요하랴!
참이슬 소주에, 상추에, 콩나물 무침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집과 가족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우리의 네팔 가이드 어눞 구릉(왼쪽)과
한국 음식점 사장인 앙도르지 셀파
이들의 이름에서 보면, 뒤에 있는 성이 바로
그들의 부족을 나타낸다.
즉 우리 가이드는 ‘구릉족’ 사람이고
음식점 사장은 ‘셀파족(고산족)’사람이다.
앙도르지 사장의 발음은 거의 한국 사람과 유사할 정도로 유창했다.
한국 사람의 양자로, 한국에 들어와 이대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6개월 정도 배웠을 뿐이라는데...
아마도 오랜 셀파를 하며 한국등반객들과 접촉이 많았던 모양이다.
점심 식사 후 이동하던 차 안에서 목격했던 광경~!
폭동이 일어난 뒤 처음으로 인도에서 기름이 들어오자
주유소 앞에 기름을 사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경찰과 군인들이 질서 유지를 위해 무장 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
다시 카트만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와얌부나트 사원에 올랐다.
카트만두 중심가에서 북서쪽에 자리잡은
스와얌부나트에 오르려면 365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5c경부터 불교의 주요 순례지였던 기록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고풍스러운 골목 곳곳에는 불상이 앉아 눈을 마주한다.
카트만두 시내를 내려다보려니, 자욱한 스모그의 세계다.
카트만두는 분지라 매연이 바깥으로 잘 빠져나가지 못해
늘 시가지가 저런 모습이라고 구릉씨가 말한다.
또한 네팔은 지진이 잦은 나라이고
50년~·100년 사이 큰 지진이 한번 씩 오게 되는 데
곧 대지진이 올 것이라고들 하며, 그 포인트가 바로
카트만두라고 걱정을 많이 한다.
지하 5층까지 스님들이 공부할 수 있는 방이 만들어져 있었고
오후 4시쯤인 그 시간에도, 스님들은 각자 열심히 공부하고 계셨다.
부처님이 카트만두 계곡에 연꽃을 심었는데,
연꽃은 스스로 피어나서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기적을 보였다는 데에서
스와얌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스와얌부(Swayambu)는 '스스로 창조된' 또는 '스스로 존재하는'의 뜻이다.
경전 중에는 뱀의 피로 쓴 경전이 있는데
가뭄이 극심할 때 이 경전을 읽으면
풍족하게 비가 내린다고 한다.
‘금강저’란 무기의 일종
고인을 위한 추도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힌두교도들
5시경,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볼 시간이 되었다며
우리의 가이드는 서둘러 쿠마리 사원이 있는
달바르 광장(Durbar Square)으로 일행을 데리고 갔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달바르 광장은
카트만두 밸리의 세 왕궁 광장 중 하나이다.
이곳은 19c까지 네팔 왕족이 거주하였고, 네팔 군주의 대관식 같은
국가의 주요 행사가 치러지던 하누만도카 옛 왕궁 단지를 총칭하는 곳이다.
달바르 광장은 네팔 청춘 남녀들의 데이트 장소로 적합한 모양이었다.
짝을 지은 많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즐비한 리어카 상점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장신구들을 보고, 수공예품들을 사고...
많은 청춘 남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도 하고
무슨 집회 같은 것도 열리는 넓고 개방적인 광장이었다.
이 광장에 밀집되어 있는 어느 조그만 상점에서
남편의 파슈미나(산양모 ) 가디건을 $50에 샀는데, 아주 얇고 따뜻했다.
색상이 다양하지 못한 게 흠이었지만, 가격도 싸고 가짜는 없다.
구왕궁 입구에 서 있는 원숭이신(하누만)을 상징하는 조형물.
네팔의 민가에서는 귀신을 쫓기 위해 탈을 걸어놓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탈은 이 하누만의 모습을 본 딴 것이란다.
달바르 광장의 서점 앞에 걸려있던
아주 반가운 얼굴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달바르 광장의 남쪽 끝에 위치하는 쿠마리 사원이다.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는, 샤카족 즉 ‘석가족’에서만 뽑으며
기본적으로 네왈리의 카스트를 지녀야만 하고
32개의 기준에 의해 아주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선발된다.
몸은 보리수와 같아야 하고, 다리는 사슴과 같고,
눈꺼풀은 소를 닮아야 하고, 온 몸에 흉터가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 쿠마리의 선출 기준은 학력이나 지능이 아니라 신성함이다.
일련의 시험을 거쳐 선택이 된, 쿠마리는 매년 9월에 있는
인드라자트라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데, 이때 국왕이 제일 먼저
쿠마리에게 무릎을 꿇고 복을 빌며 여신으로 섬김을 맹세한다.
쿠마리로 지내는 동안은 그야말로 여신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짙은 화장에 이마에는 '티카'라 불리는 제 3의 눈이 그려진다.
이것은 불교의 스투파 상단의 제3의 눈과 같은 것으로서,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와 법을 꿰뚫어본다는 신성한 눈이 되는 셈이다.
힌두 여신인 탈레주의 현신이 된 셈이지만
네팔에서는 모든 종교를 초월해 현신으로 숭배를 받는다고 한다.
쿠마리로 있는 동안, 어떤 경우라도 몸에 피가 나면
그때부터 쿠마리의 자격은 박탈당한다.
초경이 아니라도, 가시에 찔려 손가락에 피를 흘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쿠마리에서 물러난 소녀들은
집에서도 외면당하고, 남자들도 두려워해 결혼도 못했으며
비참하게 떠돌거나, 더러 창녀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평생 연금을 받아 결혼도 하고 잘 산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지금의 쿠마리는 5년 째의 여신이라고 하는 데
아주 어린 모습은 아닌, 소녀의 쿠마리가 잠시
창가에 얼굴을 내밀며 <나마스떼>하고 웃어준다.
촬영은 금지되어 사진을 다시 찍은 것이라 영 흐리다.
시간도 정해져 있고, 약간의 기부금을 내어야
사람들은 쿠마리를 잠시 볼 수 있다.
쿠마리는 이 사원 안에서만 생활하며
일 년에 7번의 축제 때만 잠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신화와 현실, 과거와 현재, 상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이 특이하고도 대중적인 달바르 광장을 걸어나오니
어느덧 어스름이 내린다.
리어카상들은 촛불을 켜거나, 달빛을 가로등 삼아
어둠이 내린 뒤에도 아랑곳없이 장사를 계속하는 모습이다.
가이드를 따라 네팔의 정통 음식점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주 독한 술 한 잔에 함께 주는 간식을 먹으며
다락방에서 약 40분간의 민속 공연을 보고
모두들 발동이 걸렸다.
랫~썸~띠~리~리~~로 반복되는
네팔의 포크송을 부르며, 모두들 제 흥에 겨워
스텝도 모르는 춤을 가이드를 따라 흔들어 댔다.
‘정통 음식’ 운운하길래, 기대를 했었는데
이 주물 접시에 담은 밥과 다섯 가지 반찬이 전부다.
야채 볶음 두 가지에, 네팔 김치 하나, 그리고
돼지고기 요리 두 가지다.
서툰 한국말로 ‘멧돼지'라고 외치자
장난기가 발동한 한 선생님이 일어서서 하는 말
“No 멧돼지, This is 뱃데지 OK?"
동시에 폭소가 터졌다.
영문을 모르는 식당 종업원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를 이리저리 자꾸만 쳐다보며 머리를 긁적인다.ㅎㅎ
네팔 정통 식당의 종업원이 보여주는
잠깐의 불쇼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행을 정리했다.
바깥으로 나오니 그동안 추적거리며 비가 내리고
비를 맞으며 짐을 내려 공항으로 들어갔으나
공항엔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수시로 정전이 일어나고는 했다.
따뜻한 물은 커녕, 10시가 넘은 공항 화장실엔
아예 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세수도 포기하고, 모두들 어두컴컴한 의자에 앉아
여행동안 익숙해진 기다림의 자세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붉은 산다화꽃들이
꽃몽오리를 몽실몽실 맺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고
그동안 보고 싶었던 모든 풍경들이 가슴으로 안겨왔다.
다음 여행지를 정하고 일행들과 헤어졌다.
동서양 문물의 교차로였던 ‘터키’나
피라밋의 나라 ‘이집트’ 중에서 정하기로 하고
인생은 그야말로, 끝없는 여정의 연속이니
다음 여정이 정해져야, 그때까지 또 내 삶이
하루하루 알차고 빈틈없이 이어질 것을 믿는다.
그동안 지루하고 긴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 여름 다시 여행을 다녀오면 그 흔적들을 올리겠습니다.
출처 : ★부산 맛집기행★
글쓴이 : 퍼진라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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