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향기가 제철을 만나
사방팔방 바람을 타고 천지에 진동하는 계절이다.
서울 친구네 혼사에 들렀다가,
거기서 만난 친구들을 따라 두물머리로 갔다.
아니, 두물머리 부근에 있는 세미원(洗美苑)의 연꽃들을 만나러 갔다.
세미원은 입장료가 제법 비싼 유료의 정원답게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세미원’이란 이름의 유래는,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觀水洗心)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觀花美心)는 성현의 말씀에서 핵심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항간의 식물원이나 공원처럼 인식해서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나가는 곳이 아니다. 팔당호가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물의 정원 세미원을 만든 궁극적인 이유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의 진리를 마음 깊이 깨닫고 가라는 의미심장함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 저절로 걸음은 느려지고, 호흡은 심호흡이 된다.
우선 매표를 해서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국기가 그려져 있다.
음양의 조화와 태극의 오묘함을 인식하고 들어가라는 의미리라.
그리고 바로 처음으로 만나는 국사원이란 이름의 연못은
우리나라 지도 모형으로 만들어져 수련을 가득 심어 두었고,
주변으로는 무궁화를 많이 심어
한창 싱싱한 무궁화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착상이 기발한 장독대 분수를 지나면,
바로 펼쳐지는 거대한 홍련지(紅蓮池)와 백련지(白蓮池)가
입을 딱 벌리게 한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연꽃 순례를 다녔지만,
이렇게 정갈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둔 연밭은 처음이다.
정철의 <성산별곡> 한 구절이 저절로 입속에서 웅얼거려진다...
하룻밤 비 기운에 홍백련이 섞어 피니,
바람기 없어도 만산이 향기로다...
그렇다, 연꽃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십 리를 날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연꽃을 만나러 가는 바람에는 연향이 실리지 않았고,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에는 연향이 실려 있다고
돌아가신 미당 선생님이 시로 얘기하셨다.
해마다 이즈음에 연잎을 따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연밥을 해서 나누는 까닭에
나는 연꽃도 꽃이지만, 연잎을 유심히 쳐다보는 편이다.
유난히 싱싱하게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는 연잎들이
어느 것 하나, 흠이 있거나 상한 것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자라고 있다.
연꽃 또한 어린 소녀의 젖가슴처럼
곱고 보드랍고도 맑은 색감의 꽃잎을 펼쳐내고 있어,
바로 한 송이 따서 커다란 수반에 연꽃차를 그윽하게 우려내고 싶었다.
꽃이나 잎이나 씨앗이나 뿌리까지도
하나같이 좋은 약이 되고 음식이 되는 연은
정말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물이다.
연밭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연향기에 취해본다.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는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신선들이나 노닐 것 같은 연밭을 구경시켜준 친구가 고맙다.
마하가섭만이 염화미소를 지었으랴~!
세미원으로 들어오는 또 하나의 방법은
열수주교(列水舟橋)를 통해 걸어오는 방법이 있다.
신양수대교 옆으로 나지막하게 만들어져
양쪽으로 깃발을 휘날리고 있는 멋스러운 다리는
이름 그대로 물 위에 배를 나란히 띄우고
그 위를 널빤지로 연결해 만든 다리다.
두물머리 쪽에서 걸어온다면 열수주교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
훨씬 더 운치를 누릴 수 있는 연꽃 만나러 가는 길이 되지 싶다.
모든 사물과 자연에는 제각각 가장 돋보이는 때가 있는 법,
향기 그윽하면서도 고혹적인,
세속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
제 멋을 한껏 뽐내는 천국 속에 묻혀있다 나오는 길목에는
시 한 수가 저절로 중얼거려진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나이 먹어가니 친구가 점점 더 좋아집니다.
아니 어쩌면 친구가 편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친구 덕분에, 아주 먼 곳의
고운 풍경 하나를 만나고
원고도 하나 건져 왔습니다~~ㅎㅎㅎ
중부지방에는 가뭄이 극심하다고 하네요~~
오락가락하는 이 지겨워지려는 비가, 아니
비구름이 중부지방으로 미련없이 뚝 떠나갔으면 싶습니다.
휴가철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끼리, 혹은 부모님 모시고
서로 마음 나누고, 정이 돈독해지는 시간들 보내시기를요~!^^
인터넷 신문 링크 걸어둡니다~~
http://www.leaders.kr/news/articleView.html?idxno=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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