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퍼진라맹 글 : 옆지기
2010년 새해 첫 아침
새벽 5시 15분, '악사라이'에 있는 호텔에서 출발
카파토키아 열기구 타는 곳까지 한 시간을 달려 갑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우리 일행들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스럽게 바람이 심하지도 않고, 비도 오지 않아
열기구 타기에는 좋은 날씨가 우리들의 새해 첫 아침을 열어줍니다.
도착해도 아직 깜깜한 새벽~!
터키 여행 중에 가장 추웠던 지역이 바로 분지였던 카파토키아였습니다.
주변에 아직 잔설이 남아 있고
새벽의 기온은 족히 영하로 떨어지고도 남았지만
일행 23명, 10살짜리 채림이까지
그 꼭두새벽에 모두 정시에 출발하는 데 늦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최측에서 준비해 둔 차와 간식을 먹으며
엉성하게 피워놓은 모닥불도 불이라고
모두들 둘러서서 열기구가 완성되기를 기다립니다.
특이하게도 하늘이 핑크빛으로 밝아옵니다.
군데군데 녹지않은 눈들이 남아있고
여기저기서 예약 받은 열기구들이 열심히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습니다.
바람이 다 불어지면, 가스통을 싣고 가스불을 붙여
뜨거워진 공기가 열기구를 공중으로 뜨게 하는 간단한 원리인데
여기서 자칭 파일럿이라고 하던 청년의 설명에 의하면
조종하는 줄로 좌, 우 회전이 가능하고
불꽃의 세기로 바구니 높낮이의 조절이 가능한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적당한 세기의 바람이 불어주는 것입니다.
그날은 모든 삼박자가 잘 맞는 행운의 날씨였습니다.
열기구 타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일인당 160유로라는데, 우리는 단체라고 할인해서
150유로(약 265,000원- 그때 시세)씩 내고, 한 바구니에 23명과 파일럿까지 24명이 탔습니다.
우리가 대충 알고 가기로는 140유로로 알았었는데...
아마도 가이드랑 뭔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엄청난 비용입니다. 우리 일행 모두 합하면
약 70분의 비행 시간에 600만 원이 넘는 거금이 날아갑니다. ㅋㅋㅋ
열기구 모양과 색상이 각기 다른 데, 아마도 회사가 다른 모양입니다.
우리들이 탈 대형 열기구에 바람 불어넣고 있습니다.
옆으로 눕힌 풍선에 바람이 다 들어가면, 불을 붙입니다.
열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풍선이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서고
더 열기를 올리면 마침내 두둥실 하늘로 떠오릅니다.
가스는 프로판 가스라고 하네요.
바구니는 보통 6인용, 8인용, 12인용...등이 일반적인데
아마도 그날 우리 바구니에 가장 많은 사람이 탔지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구름이 자욱한 날이라 선명한 일출은 없었습니다.
주변이 서서이 밝아질수록 사진이나 화면으로 보았던
신비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우주선을 타고 외계를 여행하다, 갑자기 낯선 행성에 떨어진 느낌입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사진과 영상들을 보고 왔으나 막상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그냥 말문이 막힙니다. 터키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 두 군데를 들라면 '파묵깔레'와 '카파토키아'라고 말하겠습니다.
약 3백만 년 전 에르시예스 산(Erciyes 3,916m)에서 격렬한 화산 폭발이 있은 후,
두꺼운 화산재가 쌓여 굳어 갔을겁니다.
그 후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래와 용암이 쌓인 지층이
몇 차례의 지각변동을 거치며 비와 바람에 쓸려 풍화되었겠지요.
그렇게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굴을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바위입니다.
날카로운 돌만으로도 절벽을 파고 들어가 집을 지을 수 있었기에
오랜 생활의 공간이나, 잠시 숨어지내는 거처로서도
손색없는 다기능적 역할을 긴시간 해 왔습니다.
이 바위촌의 첫 입주민들은 로마에서 박해를 피해 건너온 기독교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암벽과 바위 계곡 사이를 파고 깎고 다듬어
교회와 마구간이 딸린 집들과 납골소와 성채를 만들고,
놀랍도록 거대한 지하도시까지 건설했습니다.
결국 카파도키아는 자연과 인간이 공들여 함께 만든 걸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들의 열기구를 조종하던 자칭 파일럿 청년입니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주의점을 설명하겠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착륙시의 포지션이라고
자신이 착륙 5분 전을 외치면서 줄을 잡아 당기면
우리들은 일제히 줄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고
바구니 몸체에 붙은 줄을 꼭 잡고 몸을 바닥으로 낮추라고 합니다.
연습을 몇 번 하고서야 열기구가 두둥실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열기구 떠오르기 전에 바구니 사방을 열심히 뛰어 다니며
둘, 셋씩, 사진을 찍어주는 청년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도 일종의 서비스라 생각했지만~ 큰 오산~!
바구니 착륙하기 무섭게 사진을 인화해와서는 1장에 자그마치 3달러씩 달라고 합니다.
오~ 마이~ 갓~!
드디어 저 아래쪽에 줄을 던져놓은 채 우리들 열기구가 둥실 떠 올랐습니다.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바람도 적당하고 가스불 때문에 머리도 따뜻해서 견딜만합니다.
카파토키아의 진면목들이 한눈에 들어올만한 높이로 올라가서
열기구는 바람을 타고 서서히 이동을 시작합니다.
까마득한 높이로 올라갑니다.
카파토키아를 감상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열기구를 타고 위에서 한눈에 조망하는 방법
둘째, 차량이나 말, 자전거, 스쿠터 등을 타고 돌아보는 방법
셋째, 트레킹으로 구석구석을 다 누비며 자세히 살피는 방법.
우리 일행은 세번째 방법은 부분적으로 조금 체험했을 뿐
시간 관계상 2박 3일 정도를 머무르며,
이 계곡, 저 바위의 신비로움을 여유롭게 음미하며
스머프들의 마을 위로 해가 뜨고
로즈밸리의 붉은 장미바위들을 배경으로 해가 지는 아스라함을
맛보지는 못하고 떠나 왔습니다.
간절한 아쉬움이 남으면 다음에 또 올 수 있겠지요.
일단 첫번째 방법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카파토키아의 주요한 볼거리는
동서로 약 20Km, 남북으로 약 40Km의 지역에 흩어져 있어
참으로 방대한 것들을 제대로 보려면 2박 3일은 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 내에 볼 수 있는 최대치를 둘러보려 계획을 세웁니다.
2010년 새해 첫 아침 공중에서 문득
올해의 계획을 점검하고 새해 소망을 빌어봅니다.
작년과 제작년에 걸쳐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인 법~!
힘든 일들 지나갔으니, 올해는 또 달작지근한 시간들을 기대하면서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이 정의한
삶의 성공을 나즈막히 읊조려봅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이런 성공의 일부분을 이루기 위해 또 한해를 살아야겠습니다.
카파토키아 응회암 골짜기를 병풍 삼아 두르고
사람들이 현대적인 집을 짓고 함께 살아가는 윌귑 마을이 보입니다.
카파토키아에서 제일 좋은 특급 호텔이 저기에 다 있습니다.
파이럿 청년이 손가락으로 저기 산꼭대기 뽀족한 바위 아래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자신의 집이 있다고 합니다.
영화 '스타워즈'와 세계적인 에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의 무대
요정들의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길고도 긴 세월 인내와 침묵으로 만든
자연의 작품이 아니고서야 보고 또 보아도
도무지 눈을 의심해야 할 이 신기한 모습은
인간의 짧은 상상력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멀리 눈에 덮힌 핫산이 보입니다.
해발 3000m가 넘는 핫산은 카파토키아의 아름다운 경관을
돋보이게 만드는 보조 경관입니다.
'카파토키아'의 뜻은 '좋은 말이 나는 땅'이라고 합니다.
예전 페르시아 시대, 이곳에서는
사라브렛 종의 품질 좋은 말이 많이 사육되어
특산품으로 황제에게 진상되었다고 하는 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말을 키워 얻는 수입보다
관광객들의 입장료 수입이 터키 국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싶습니다.
이 사진 참 환상적으로 나왔네요.
어디 지구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곳으로
잡지 화보로 내도 손색없을 듯 합니다.ㅎㅎ
부드러운 산능선들이 마치 사막의 사구 능선을 보는 듯합니다.
커턴을 쳐놓은 듯한 웅장한 바위산들이 펼쳐집니다.
바위 위에 누가 모자를 만들어 씌운 듯합니다.
몸통과 머리를 형성하고 있는
바위의 성분이 다른 탓에 풍화작용하는 속도가 달라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런 특이한 바위들을 형성하게 됩니다.
온갖 모양의 페리바자(요정의 굴뚝)들이 전시회하듯 펼쳐집니다.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던 들판 위에
드디어 우리들의 열기구가 착륙했습니다.
착륙 5분 전을 외치기 무섭게 바구니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바구니가 옆으로 누워버렸고
줄을 잡고 앉았던 우리들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다린 꼴이 되었습니다.
겨우 수습을 해서 사고없이 다들 무사히 제자리에 섰습니다.
계속 우리 열기구를 지상에서 따라오던 차량이 멈추고
순식간에 칵테일 파티상이 마련되었습니다.
파일럿 청년이 말합니다.
자기네들팀과 우리팀들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함께 축하와 사랑을 나누는 의미라고,
제일 연소자 채림이와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고
작고 예쁜잔에 골고루 나누었습니다.
칵테일은 거의 과일쥬스 맛이라 부담없이 한 잔씩 즐겁게 마십니다.
한명씩 차례로 호명하며 나누어 준 비행수료증입니다.
비싼 수료증인 까닭에 우리집에 지금 고이 모셔 두었습니다.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새해맞이 행사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멀리 눈을 꼭대기 이고 있는 핫산이 보입니다.
터키라는 나라는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끼여
해마다 조금씩 융기하고 있는 땅이라고 합니다.
아침 먹고, 이제 본격적인 카파토키아 탐방에 나섰습니다.
구석구석 중요한 곳으로 차량으로 이동하고
자세하게 보아야 할 곳에서는 약간의 자유시간과 트레킹
맨 먼저 카파토키아에 있는
20여 개의 지하도시 중에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 거대한 지하도시
데린쿠유와 카이막쿨러 중, 우리는 데린쿠유를 보러 갑니다.
우리를 태운 기사 아저씨, 데린쿠유 가는 입구를 잘 몰라서
카파토키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을 사이를
하염없이 꼬불꼬불 지나갔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이 사는 집을 아주 가까이 보면서 지나갑니다.
저 위쪽에 응회암 덩어리들이 성곽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동네 꼬마 아이들이 초롱한 눈으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웃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색연필이나 볼펜 같은 것을 준비해 올 걸 싶었습니다.
드디어 지하도시 데린쿠유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약 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 수 있다는 거대한 지하도시를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아주 좁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동굴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B,C18세기 히타이트 인들에 의해서 군사나 주거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제국에 점령되었다가
12세기 오스만투르크 지배 이후 폐허가 되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20세기에 와서 이 마을 사람들이 키우는 닭들이
이유도 없이 자꾸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닭들을 찾아 마을 구석구석을 살피던 사람들의 눈에
마침내 긴 시간 지하에서 잠자던 이 지하동굴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세계를 놀라게 한 지하 유적지입니다.
도르레를 사용하여 지하 20층 깊이까지 연결된
운송의 통로이며, 산소 공급의 통로이고
지하 도시에서 나오는 오물을 버리는 통로로 쓰이기도 했다는 장치입니다.
머리를 숙이고 조심스레 앞사람 따라 들어갑니다.
데린쿠유란 뜻은 '깊은 우물'이란 뜻이고
실제로 20층의 맨 아랫쪽에 지금도 우물이 고이고 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물이 없으면 사람들이 살아갈 수가 없었겠지요.
우리에게 개방되는 공간은 지하 7층 정도까지 입니다.
구석구석 불을 밝혀 두었지만
은밀한 곳을 보고 싶으면 저처럼 손전등을 들고 가시면
아주 요긴하게 잘 쓸 수 있습니다.
개인들이 사용했던 방입니다.
옆방으로도 연결되고 벽에 구멍을 뚫어 사물함도 만들었네요.
모두 연결되는 구조다 보니, 은밀한 개인적인 공간을 사유하기는 어려웠겠습니다.
이 거대한 둥근 돌은 '물레방아돌'이라고
적의 침입을 대비하여 약 20m 정도의 좁은 통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 곳이나 설치하여
적이 침입하면 굴려서 막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세계 3대 지하 유적지는
폴란드의 '소금광산' 로마의 '칸타콤베'
그리고 터키 카파토키아의 이 지하 도시라고 합니다.
아래 위쪽 사진의 조금 넓은 공간은
공공 집회장, 혹은 교회라고 하는데요. 그 공간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
공중 도덕을 해치는 행동을 한 사람을 매달아 놓고
집단적인 처벌을 가했다고 하네요.
모두의 생존이 달린 상황에서는
아마 처벌도 엄격해야 규율이 잘 지켜졌을 것 같습니다.
가이드나 화살표 없으면 우리는 영영 이 속에 갇혀
다시는 햇볕 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없이 연결되는 미로같은 통로를 따라 가다 보니
가슴이 갑갑하고 빛이 그리워졌습니다.
당시에 사람이 죽으면 묻은 관 같은 모양의 지하묘지로 추측합니다.
아주 좁은 통로를 기다시피해서 통과해
당시 학교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공간에 다녀왔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맨 먼저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그 다음으로는 배우는 문제가 우선이었겠지요.
인간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오늘을 위해 사는 동물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사는 동물이라 그럴겁니다.
약 40분을 못 보았던 햇살이 어찌나 반갑던지...
입구에서 버스가 서 있는 길까지 걸어나오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전통 의상을 입힌 인형들을 만들어서 팔고 있었지요.
작은 것은 하나에 1달러, 화려한 옷에 수 놓은 것은 5달러
응회암으로 만든 기념품들은 조악하기도 했지만
쉽게 부서질 것 같아서 그냥 눈으로만 감상했습니다.
하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무수히 포개놓은 듯한
우치히사르(뾰족한 성채) 계곡
방향을 바꾸어 옆쪽을 봅니다.
우치히사르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왼쪽의 높이 솟은 바위군들이
영화 '스타워즈'의 본부 건물로 촬영되었답니다.
적들의 침략을 막기 위한 성벽이 쌓여져 있고
과거 이곳에서 수도사들이 비둘기를 사육했다고 해서
'비둘기 계곡'이라고도 합니다.
비둘기 깃털을 모아 비료를 만들어 썼다는군요.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낙타 한 마리를 세워놓고
한번 타고 사진 찍는 데 1유로라는데, 문제는 10m 떨어진 곳에서도
악취가 진동하는 낙타의 냄새 때문에 근처에 가기를 다들 꺼릴 정도였습니다.
(에~구~! 낙타를 좀 씻겨서 돈벌이를 하시지)
낙타 뒤의 저 거대한 동굴 타운에 조명 장치를 잘 해두어
밤에 오니 찬란한 조명을 밝혀두어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계곡 아래쪽으로 저 작은 나무들은
살구나무와 포도나무들이고, 마을 여인들이 주로 가꾸는데
이동 거리가 멀어 당나귀를 타고 다닌다고 하네요.
바위군들 사이의 작은 길들을 걷노라니
정말 세찬 바람이 휘몰아 가더군요.
바람의 흔적으로 남겨진 저 무수한 자욱들이
진한 공감으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서면
언제나 '겸손함'을 온몸으로 배웁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작고도 작은 존재인지를
얼마나 하찮은 한 알의 모래알인지...
얼마나 짧고 덧없는 시간을 보내다 가는지...
얼마나 시끄럽고 인내심 없는 생명인지...
다니다보니 또 배꼽시계가 점심 시간을 알립니다.
우치히사르에서 도자기 제작으로 유명한 네브쉐히르로 가는 길,
크즐 으르막(붉은 강)에 오리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굴 식당과 동굴 호텔이 많이 있는 '네브쉐히르'의 한 동굴 식당에서
점심 특식으로 '항아리 케밥'을 먹습니다.
밤에는 공연장으로 쓰이고
낮에는 식사를 제공하는 동굴 식당이랍니다.
탁자와 의자들이 모두 돌입니다.
기둥과 천정, 바닥도 모두 돌이겠지요.ㅎㅎ
이 항아리 안에 닭고기 케밥을 담아 익혔답니다.
밥과 함께 먹을만큼씩 담아서 차례로 돌아갑니다.
종업원이 발음도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접시를 돌립니다.ㅋㅋㅋ
점심 먹고 곧장 버섯 바위들이 기기묘묘하게 펼쳐진
'파샤바' 계곡으로 갑니다.
걸어서 다니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버스를 세우기 적당한 곳에 내려주다 보니
사진의 포인트가 맞지 않네요.
이 사진은 잠시 다른 곳에서 빌려 왔습니다.
벨기에의 애니메이션 감독 페요(peyo, 본명 : 피에리 컬리포드)는
파샤바 계곡의 버섯 바위들을 보고
개구쟁이 스머프들의 마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누군가가 모자 모양의 지붕을 만들어와서
위에 씌워놓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바람과 세월만으로 저런 모습의 바위를 만든 것인지...
이 계곡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길에서 가까운 다른 계곡 사이를 잠깐씩 다녀보았지만
그래도 감동은 참으로 놀랍고 깊었습니다.
이 다채로운 바위들에게
각자 이름을 붙여보라고 가이드가 말합니다.
우뚝서서 망을 보고 있는 미어캣 같기도 하고
물고기 바위, 낙타 바위...
낙타 바위
장삼 두르고 걸어가는 수도자 같기도 합니다.
참으로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어느새 맑아진 하늘빛을 배경으로
침묵의 자태쇼를 마음껏 펼칩니다.
바위와 골짜기의 틈새를 사납게 헤집고 지나가는
바람의 반주가 없었다면,
너무도 오래된 묵은 침묵만이 무성한 광활한 공간입니다.
골짜기 어딘가에 숨어 휴식을 즐기려던 새들이
인기척에 놀라선지 일제히 날아올랐습니다.
하늘에 까만 콩들을 뿌린 듯 합니다.
하마 모양 같아 혼자서 '하마 바위'라며 쳐다봅니다.
오늘도 바람결에 조금씩 풍화되고 있는 바위들과
언제 만날 지 모를 이별을 나눕니다.
오후 4시경 괴뢰메 골짜기로 왔습니다.
카파토키아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괴뢰메 파노라마는
바위들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합니다.
괴뢰메에서 오르타히사르로 조금 걸어올라가면
5~12세기에 걸쳐 박해를 피해 온 크리스트교도가 만든
30여 개의 석굴 교회가 모여 있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만든 교회 입구와는 대조적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색상도 선명한 프레스코 성화들이
방금 그린 듯한 모습으로 마주봅니다.
맞은편 깍아지른 절벽 중간에도
곳곳에 거주의 흔적이 보입니다.
아마도 위쪽에서 내려가는 통로가 있어
마주보는 쪽은 창문 정도의 역할을 했지 싶습니다.
각각의 작은 동굴 교회들은 다 이름이 있습니다.
맨먼저 들어가 본 '성 바실 교회'인데요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벽화는 성모자상입니다.
이 외에도 성 디미트리우스, 말을 탄 성 요한,
성 테오도르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 요한은 카파토키아의 수호 성인이었습니다.
위와 아래 사진은 모두 '사과의 교회'입니다.
4개의 기둥으로 지탱되는 돔 형식은
성소피아 사원의 건축 방식을 본받은 것이라고 하네요.
(성소피아 사원은 이스탄블에서 보여 드립니다)
벽에는 붉은 색 흙 도료로 십자가와 기하학 문양,
새, 나무, 꽃...등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교회의 이름은 후진 돔의 천사 가브리엘이 가지고 있는
지구가 마치 사과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근처에 사과나무가 있었던 것이라고도 하는 데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동굴 안에 너무도 선명하고 완벽하게 남아있는 프레스코화
이 교회의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따로 돈을 받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성지순례차 온 교인들은 들어가 보겠지만
저는 그냥 바깥만 보고 다시 나옵니다.
더러는 인공의 흔적도 보입니다.
앞의 계단은 시멘트를 조금 덧붙여 만든 듯하고
우측의 돌을 쌓아 중간까지 막아 둔 것도
필요에 의해 사람들이 한 흔적으로 보입니다.
다니다 보니 짧은 해가 저물어갑니다.
아쉽지만, 이 거대한 자연 박물관을 떠나야합니다.
그 영상들을 마음 속에 하나라도 더 기억시키려고
해가 지도록 기웃거려 봅니다.
분지라 그런지 유독 해가 더 빨리 지는 느낌입니다.
우뚝우뚝 거대하게 솟은 장군 바위를 마지막으로
작별의 손을 흔들지만, 다들 돌아앉은 느낌입니다.
이 매혹적이고 지독히도 낯설게 놀라웠던 공간을
그만 등지고 버스에 오릅니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가슴에 남아있을 그리운 풍경이 되지 싶습니다.
터키석 파는 보석상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결혼 25주년을 맞은 커플도 있고,
아내의 생일을 맞은 커플도 있어서
각자 아내들에게 터키석 반지 하나씩 선물합니다.
저는 보석에 별로 흥미가 없어서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는 데
울집 남정네 귀걸이 하나 하라고 권합니다.
제가 유일하게 하고 다니는 악세서리가 귀걸이라
비싼 금으로 세팅한 것 말고, 헐직한 은으로 세팅한 귀걸이 하나 했습니다.
깎고 깎아서 60달러 주었습니다.
여름에 해변에서 하면 시원해 보일 듯합니다.ㅎㅎㅎ
가까운 식당에서 다시 양고기 케밥으로 저녁 먹었습니다.
터키 사람들 양고기를 즐겨 먹어 그런지
특히 남자들의 체취가 정말 독하게도 역겨웠습니다.
곁에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어찌나 독하던지...휴~우~
한국 사람들 체취는 마늘 냄새나 김치 냄새가 나겠지만요.ㅎㅎㅎ
민간의 한 동굴집을 방문하러 가는 밤~!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이발소가 보입니다.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는 이발사 아저씨의 미소가 활기찹니다.
보름을 이틀이나 지난 달이 내 눈에는 아직도 둥글게 보입니다.
바람이 엄청부는 동네 골목길을 한참을 돌아 걸어 내려가
사람이 살고 있는 동굴집을 견학합니다.
벽에 손가락을 문질러보니 하얀 돌가루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안방이자 거실인 듯한 공간인데요
보기에는 좁고 허름해 보여도
부엌에는 식기 건조기에 드럼 세탁기까지 갖추고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3대가 함께 사는 공간입니다.
모두 개방된 공간이다 보니,
부부나 개인이 사생활을 가지기는 좀 어려워 보였습니다.
70세라는 할머니 어찌나 곱게 늙으셨는지
눈동자도 맑고 초롱하게 느껴집니다.
이슬람식으로 안고 뺨에 뽀뽀해주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14살 짜리 이 집 아들 핫산입니다.
곁에서 14살 석현이가 함께 서 봅니다.
핫산이 작은 건지...석현이가 큰 건지...ㅎㅎㅎ
홀쪽해 보이는 아저씨와 반대로
아이 엄마는 아직 젊은 나이에 엄청난 비만입니다.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이웃 사람들이
숯불에 양고기 고치구이를 올려놓고
술잔을 나누며 왁자지껄 한바탕 재미있는
저녁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너무 좋아 아마 저들도 저렇게 함께 즐기는 모양이었습니다.
'메르하바' 인사를 하자, 고기 한 점 먹고 가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는 새벽에서 밤 늦게까지 길고도 긴 하루를 보냅니다.
카이세리 공항에서 우리는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에 도착해 호텔로 다시 가서 하루를 접어야합니다.
아마도 새벽이 되어야 잠자리에 들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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