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퍼진라맹 글 : 가얏고
30일 아침 여행 6일째입니다.
온천욕하고 잔 탓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떨어집니다.
6시 30분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 파묵깔레 위쪽에 자리하는
'히에라폴리스' 유적지를 보러 올라갔습니다.
일행 중에 사진 작가 선생님이 4분이나 계십니다.
모두들 양 어깨에 카메라 두 대씩 메고 열심히 대상 포착중입니다.
동쪽의 성곽 입구를 들어섭니다.
전체의 성문은 동, 남, 북쪽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파묵깔레의 석회붕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는 동쪽의 성문으로 들어서서, 히에라폴리스 유적지를 관통하여
서쪽의 석회질 온천수 사이를 1시간 30분 이상 걸어내려 가는 것으로
오전의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히에라 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란 뜻입니다.
B.C 190년 페르가몬 왕조의 에우메네스 2세가 건설했으며
페르가몬의 시조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따서 붙였답니다.
이후에 이 도시는 2~3세기 경에 황금기를 맞으며
로마의 황제, 귀족, 부유층 계급이 휴양을 위해
이 온천 도시를 자주 찾았다고 하고, 이후 비잔틴 시대에는
크리스트교의 중요한 중심지로 총주교좌를 이곳에 두게 됩니다.
그러나 도시는 느리게 쇠퇴해갔고, 11세기 터키인의 진출로 전쟁터가 되었다가
14세기 발생한 강진으로 완전히 붕괴되어 버려진 폐허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그때 이후로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지진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이 도시를 1887년 독일의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하여 지금까지 발굴중이라고는 하나, 여러가지 이유로 지지부진합니다.
비스듬한 초지 위로 올라가는 길에 날이 추워 풀 위에 온통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히에라 폴리스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야외 극장입니다.
2세기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건설되어 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입니다.
무대 정면으로 아주 호화로운 부조 장식들이 아직 남아 있네요.
좌석 중간에 철망을 쳐서 더 이상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멀리서만 쳐다보다 지나갑니다.
이른 아침 코끝이 싸할 정도의 차가운 대기지만
어찌나 공기가 맑은지 모두들 심호흡을 하며 걸어갔습니다.
그리스의 유적지를 온통 어슬렁거리던 버려진 개들을 여기서도 만났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마치 저희들이 우리 일행을 안내라도 하듯이 묵묵히 함께 걸어갑니다.
조각조각 흩어져 폐허가 되어버린 남의 나라 유적지 사이를 걸어가는 일은
묘하고도 짜릿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킵니다.
기초 터만 남아있는 아폴론 신전 곁을 지나갑니다.
히에라폴리스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이 신전은
화산 폭팔 후의 유독가스인 플루토늄이 분출하던 구멍 위에 세워져
아직도 미량의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B.C1세기경, 지지학자(地誌學者)였던 스트라본의 표현에 의하면
이곳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게 낄 정도로 독기를 품어내어
새를 던져 넣으면 바로 죽어 떨어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대에 이곳을 지키던 신관들은
이 구멍 속에 몇 분간 들어갔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신자들의 경탄을 자아내면서 신탁을 전했다고 하며
히에라폴리스는 이 성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이 신전이 바로 신성한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유적지 안에 있는 온천수 풀장입니다.
온천에서 나오는 따뜻한 김이 주변에 안개처럼 올라옵니다
이국적인 풍경의 아침~!
온천수 아래로 유적지의 잔해들이 보이지요?
풀장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야하고
견학만 할 경우 무료로 들어갑니다.
아침에 풀장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우리 일행들도 여기 잠시 앉아 풀장 바닥의 돌기둥들을 보면서
차 한 잔씩들 나누었습니다.
중앙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서 곧바로 북문 쪽으로 나가면
터키 최대의 묘지가 펼쳐지는데, 거의 1,200기의 돌무덤들이
마치 무덤의 전시장처럼 자리한다고 하지만, 들러보지는 못했습니다.
고대부터 이 온천수가 류머티즘, 피부병, 그리고 신경통에 좋다는 소문이 퍼져
아시아와 유럽에서 병자들이 떼를 지어 모여 들었는데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은 많은 사람들의 묘가 수없이 늘어나면서
히에라폴리스 북문 쪽은 무덤의 도시로 변했다고 합니다.
눈으로만 온천욕을 하면서 차 한 잔 마시려고 하는데, 배가 등짝에 붙은 이 개가 동문쪽에서부터 우리를 안내하듯 따라왔던 이 개가 계속 먹이를 달라는 듯 주변을 서성입니다. 할 수 없이 아침에 호텔에서 가방에 넣어온 계란 하나 까서 주었더니 정신없이 한입에 먹어 치웁니다.
아침 하늘이 참으로 고운 쪽빛입니다.
동에서 서로 히에라폴리스를 관통해 걸어내려오자
저기 멀리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지닌 '파묵깔레'의
석회질 계단식 온천이 나타납니다.
차를 타고, 여기로 오는 길에 목화밭을 많이 보았지만
이 사람들 표현으로는 이 하얀 천지를
'목화의 성'이란 표현이 최대의 찬사였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참 안타깝게도 여기 앞쪽의 시꺼멓게 변한
계단식 온천의 모습이 보이시지요?
무분별한 호텔의 난립으로, 수맥을 끊어버려
물이 말라버린 곳의 석회 온천은 이렇게 흉한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석회질이 풍부한 온천수가 끊임없이 흘러주어야
하얗다 못해 연한 에머랄드빛을 띤 계단식 석회 온천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멀리까지 반짝이며 영원한 문화유적으로 남아있을텐데요...
남의 나라 유적이지만, 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부족한 물줄기를 다 흘려보낼 수가 없어
오늘은 이 골짜기로 내일을 저 골짜기로 물을 흘려보낸다고 하는데
물이 내려오지 않는 골짜기는 금새 말라서 저런 흉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오늘 물이 흘러내려오는 골짜기 쪽으로
우리 일행들도 신발, 양말 모두 벗어들고
따뜻한 족욕을 즐기며, 석회질의 계단식 온천을 따라
약 한 시간 반을 걸어내려 갔습니다.
내려갈수록 물이 식어 수온은 내려갔고, 나중에는
아주 차가운 얼음물에서 마지막으로 비명을 지르며
양말과 신발을 신었습니다.
어제 물줄기가 뿌려졌던 곳으로 오늘은 이제 조금씩 꺼멓게 변해가는 모습 보이지요?
하루만 물이 말라도 먼지와 흙이 유입되어 이렇게 되어버립니다.
세계적으로 하나 밖에 없는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사소한 욕심 때문에 잃어간다면
궁극적으로 국가적 차원을 넘어 전세계적인 손실일겁니다.
지금이라도 어떤 극단적 조치를 내려 호텔을 모두 일정한 거리 바깥으로
바로 철거해서 원래의 물줄기를 복원하는 길이 모두를 위한 최선의 길일 듯합니다만...
하늘빛과 하얀 색상의 대비는 그야말로 어떤 화보를 촬영한 듯합니다.
눈이 시리도록 깨끗한 하늘을 터키에서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만큼 대기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말일겁니다.
풍부한 양의 온천수가 더 많이 솟아나
온산이 하얀 목화의 성을 이루어 오래도록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어주는 비결은 오로지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온천수가 계속 흘러주는 것이라는데...
행복하고 황홀했던 족욕의 시간이 끝나고
눈 시리도록 쳐다보았던 석회질 언덕과 파란 하늘의 풍경도 접어넣고
모두들 발 닦고 신발 신고 내려오니
터키에서 4박 5일 우리들을 태우고 다닌 버스가 기다립니다.
버스를 배경으로 보니, 석회질 언덕이 눈 쌓인 것처럼 보입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보며 또 떠납니다.
목화가 많이 생산되는 데니즐리에는
면직류 가공품을 파는 이런 거대한 가게들이 더러 있습니다.
매장이 너무도 넓어서 다 보지는 못하고
당장 바퀴가 하나 떨어져 끌고 다니기 힘들었던
여행 가방을 하나 바꾸고, 양모로 가공한
얇고 따뜻한 캐시미어 숄을 하나 샀습니다.
오늘은 커다란 산을 하나 넘어서 지중해의 휴양 도시 안?랴로 가야 합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해발 1,500m 정도의 산중턱에 위치한 한 마을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조그만 산중 마을인데, 깔끔하고 예쁜 별장 같은 집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미나렛(첨탑)이 있는 곳은 이슬람 사원입니다.
첨탑이 1, 2개 정도 있는 것은 마을의 사원이고
3, 4개 정도가 되면 공적 차원의 사원이며
이스탄블에 있는 블루 모스크는 첨탑이 6개로 터키에서는 가장 많은 경우입니다.
그만큼 격이 높은 사원이란 뜻이지요.
화덕에서 막 구워나온 듯한 빵들이 구수해 보입니다.
빵과 닭고기, 채소 몇 가지와 콩스프 등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과일이 몇 가지 없는데다
사과라고 나오는 것이, 꼭 우리 나라에서는 과수원에서 바람에 절로 떨어져
버리는 낙과 같은 것을 사과라고 바구니에 담아 두었는데
껍질은 두껍고, 맛은 퍽퍽해서 정말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또 느낍니다.
우리 나라처럼 사계절이 있어, 계절별로 아름답고
계절별로 꽃이 피고, 과일이 생산되는 나라가 드물다는 것~!
과일 중에 사과를 예로 들어도
아삭하니 물이 많고 꿀이 박혀 단맛이 많은 그런 과일이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다는 지중해 인근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요.
보시다시피 사과의 크기는 자두만 하고, 생긴 꼴이 이렇습니다.ㅎㅎㅎ
터키 사람들은 너무도 단 후식을 좋아하고
차이나 커피를 마셔도 기본으로 설탕을 서너 개씩 넣어서 마십니다.
그래서 살찐 사람들이 많고, 여인들의 둘둘 말고 다니는 히잡 속에서도
뱃살이 출렁거리는 것이 보일만큼 뚱뚱한 여인들이 많았습니다.
보시다시피 과일이 다들 이렇습니다.
먹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 별로 없네요.
큰 오렌지는 아주 신맛이 강하고
조그만 오렌지가 그나마 귤 맛이 납니다.
여행내내 과일을 실컷 먹어보지 못한 날이 많았습니다.
길거리에 달아 말려 파는 통고추와 통마늘도 보입니다.
점심 먹고 서둘러 떠나 굽이굽이 산골을 넘어갑니다.
3시 30분경 지중해 연안의 도시 안?랴에 도착해서, 지중해 물결도 보지 못하고
바로 <안?랴 고고학 박물관>으로 서둘러 들어갑니다.
바쁘고 빠듯하게 일정을 잡은 우리 일행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가 본 박물관입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파악하려면
박물관을 다녀보는 것이 제일 쉽고 빠른 방법이지요.
터키도 매장 문화가 정착된 나라인데요
이건 아마도 옹관묘이지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전엔 아이들이 죽으면 이런 옹관묘를 했습니다.
이건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술병입니다.
1층에는 주로 무덤이나 땅속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를 거쳐
대리석으로 된 조각, 부조물, 도자기류, 무기류, 장신구,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2층에는 그림, 동전, 타일, 보석, 카펫 등이 전시되었습니다.
아테나
제우스
아폴론
화려한 부조들이 장식된 석관묘입니다.
귀족들의 관이었지 싶습니다.
미대생인 듯한 학생들이 조각상들 앞에서
소묘 삼매경에 빠져 있습니다.
주변에 널려 있는 것들이 모두 석관묘들입니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지 북문 쪽에도
저런 관들이 1,200여 기가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그린 그림인데요
오래된 시간이 무색할 만큼 선명한 색체가 그대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귀족들의 석관묘
성문 앞에 세겨진 코란의 구절들
옛투르크족 귀족 여인들이 입었던 복색과
장신구, 장식품, 아래쪽에 수제 유리용품들입니다.
박물관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일제히 볼일 보고
이제 가까운 거리의 안?랴 항구로 갑니다.
다섯시가 가까운 시간 벌써 땅거미가 깔렸습니다.
'안?랴'란 도시는 B.C 2세기 초 페르가몬의 왕
앗타로스 2세가 이 지역을 침범해 들어오면서 만든 항구 도시
'아텔레이아'에서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항구 도시에 걸맞는 풍경을 나중에 만났습니다.
거리의 악사들이 특이한 음색이 나는 악기를 협주하고 있었습니다.
악기 이름을 물어 보았었는데, 적어두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잠시 서서 감상하고 음악감상비 1유로를 주었습니다.
터키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도시 중심을 지키고 있는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장군의 동상이 저물어 가는 이 도시에
힘찬 기상을 불어넣는 듯합니다.
우측의 뽀족한 탑이 이블리 미나렛(홈이 있는 첨탑)이라고 하는
안?랴를 상징하는 오래된 탑입니다.
13세기 셀축투르크 시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원형이 그대로 남아
안?랴를 사방으로 지켜주고 있는 듯합니다.
야자나무 위로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습니다.
30일날 밤은 마침 음력 11월 보름날이었습니다.
이국에서 만나는 보름달의 모습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는데요,
터키에서 보는 달은 한국에서 본 것 보다 훨씬 커 보였습니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어둑살과 잔뜩 내려앉은 두터운 구름 때문에
지중해의 제대로 된 빛깔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불리 미나렛이 더 가깝게 보이는 여기에 오니
중앙에 멋진 시계탑 하나가 보이지요?
저 시계탑과 왼쪽의 성곽 같은 것들이
과거의 견고했던 성곽이 무너지고 남은 일부분들인데
보수하여 저렇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시계탑 아래로 칼레이치(구시가)가 항구로 연결되어 있어
우리는 그 좁은 골목길을 통해 줄을 지어 항구로 내려 갔습니다.
지붕의 색과 모양이 거의 비슷한 이 마을은
오래된 집들(거의 400년~500년 묵은 고가들)이 모여 있는 칼레이치(구시가)입니다.
전통 가옥들을 내부 수리만 해서 카페, 식당, 호텔로 영업을 하고 있어
우리 나라 인사동 골목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상점이 즐비하고
고운 빛의 전구들을 밝혀 놓고 물건을 팔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이 일대에 사람들로 북적인다지만
지금은 아주 한산하고 적막한 분위기였습니다.
길거리 구두닦이 아저씨인데요
반짝이는 구두약통이 어찌나 이쁘고 고급스러운지
양념통 보다도 더 좋아보였습니다.
구두 닦는 데 얼마냐고 물었더니
이 아저씨 손가락 다 펴면서 "5유로"라고 말합니다.
ㅎㅎㅎ 농담이었겠지요. 거의 8,500원인데...
그 유명한 터키의 쫀득쫀득 찰떡 아이스크림입니다.
이 아저씨 또 우리 일행들 앞에 두고 한바탕 쇼를 합니다.
거의 일곱번의 묘기를 거쳐 아이스크림 하나를 손에 쥡니다.
하나에 1리라(약 800원)라길래
또 일행 23명 단체로 하나씩 맛 보았습니다.
남편이 총무를 담당해서 단체로 먹을 때마다
옆에서 셈하고 깎고, 일일이 챙겨 나눈다고 바빠서
잠시 또 일행과 떨어졌습니다. 급하게 뛰어갑니다.
항구에 닿게 무섭게 순식간에 조금 남은 빛이 사라집니다.
어둠의 실루엣이 아슴푸레한 이 시간이 참 아름다운 순간인데요,
항구는 곧 어둠에 쌓이면서 찬란한 조명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조명이 비친 항구는 곧 새세상으로 둔갑하네요.
물에 비친 조명도 아름답고, 해안을 밝히는
은은한 가로등빛도 그러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구시가를 거쳐 항구를 돌아 나오니
안?랴의 두번째 상징물 '하드리안 게이트'가 마지막 관문으로 반겨줍니다.
로마의 5대 현제( 賢帝)에 들었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해
속국의 시민들이 만들어 바쳤다고 하니
속국의 시민들조차 존경했던 훌륭한 황제가 하드리안 대제였던 모양입니다.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왔습니다.
안탈랴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호텔은
온통 안과 밖이 흰색으로 지어진 흰색 궁전 같습니다.
예전에 신혼여행 갔던 호텔 보다 더 잘 꾸며져 있어
그날밤은 신혼 여행 온 기분으로 하루 묵었습니다.
베란다 바깥에도 침대가 하나 놓여 있어
여름에는 거기 나가서 일광욕하는 곳이랍니다.
하긴 여름 아니라도 햇살 좋으면 일광욕하면 되지요.
깨끗하긴 하지만, 흰색이 때가 잘 타니
관리하려면 상당히 손이 많이 갈 것 같아 공연한 남의 걱정을 합니다.ㅎㅎ
흰색 건물이라 밤이 되니
온갖 찬란한 조명으로 바꾸어가며
외양과 내장을 다른 모습으로 변신시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지중해 연안의 이 멋진 호텔에서
또 하룻밤 꿀맛 같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HILL SIDE SU-라는 이 호텔은
몇해 전에 건축 디자인상을 수상한 특급 호텔이라고 하네요.
종업원들도 온통 흰색을 입고 있어 병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찍사들이 사진 찍기 위해 일부러 머문다는 호텔이기도 합니다.
기하학적 추상적인 구성이 보기 좋지요?
외부에서도 잘 보이게 건물의 색깔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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