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천의 문화재 이야기3 -벽진 이씨 문중의 용계서원
영천에서 서원하면 첫번째로 아니 아무 생각 없이 떠오르는 곳은 임고서원입니다.
너무나 유명하지요.
고려말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모신 곳입니다.
이곳은 너무 유명하기에 천천히 담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백 년 된 은행나무의 웅장함은 꼭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가을철에...
오늘은 영천에서도 청정지역인 자양면에 위치한 용계서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개략적으로 사전에 나와 있는 것을 열거하면
요렇습니다.
* 용계서원
위치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원각길 45-4
(자양면용산리 303)
건립 : 1782년 - 왕명으로 용계 서원 건립
사액 : 1786년
문화재 :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호
(이 외에도 제54인 경은 선생 제단과, 제53호인 부조묘가 함께 있습니다.
영천엔 임고서원을 포함하여 서원이 9개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귀천, 금호, 도계, 도잠, 송곡, 연계, 용계, 임고, 창대서원)
하나하나 챙겨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지요?
참고) 서원이란?
국어사전식으로 정리하면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거나 석학이나 충절로 죽은사람을 제사하던 곳>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면 <서원은 안거강학(편안하게 기거하며 학문을 갈고 닦음)의 기능뿐만 아니라 선현을 봉사하는 사묘를 가지고 있었으며 엄격한 학규에 의해 운영되는 특징을 가졌다.
서원은 지방사림세력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나아가 중앙 정치세력의 제지 기반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은 1543년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것이다.
서원의 구성물은 존현과 강학이라는 기능에 따라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
교육을 담당하는 공간인 강당,
유생들이 공부하며 숙식하는 공간인 동재·서재로 크게 나누어진다.
그 외에도 문집이나 서적을 펴내는 장판고, 이를 보관하는 서고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현존하는 서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수서원(사적 제55호), 옥산서원(사적 제54호), 도동서원(보물 제350호), 도산서원(사적 제170호) 등이 있다.>
이제 딱딱한 사전 지식은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용계서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용계서원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이맹전(李孟專)[1392~1480]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곳입니다.
생육신에 대해 설명은 생략합니다.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뺏긴 단종복위 사건에 직접 연루되어 목숨을 잃은 람들을 우리는 사육신이라 부릅니다.
성삼문을 필두로 하여 6인을 말하지요.
생육신이란 당시에는 죽음을 당하지 않았으나 세조에 반기를 들고 낙향을 하거나 전국을 순례하며 떠돌아 다닌 사람들입니다.
단종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김시습을 비롯하여 여기 용계서원에서 모시는 경은 이맹전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이제 사진 보면서 이야기하입시더!
▼ 용계서원 강당 앞에 붙은 설명 표지판
대충 이것만으로도 다 설명이 되겠지요!
▼ 정문인데 잠겨 있고, 출입문은 옆쪽에 열려 있습디더!
▼ 햇살을 받아 사람들이 잘 안 찾는 이 용계서원이 더욱 고즈넉하게 느껴지네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네요.
위 건물이 강당입니다, 지금 말하면 교실입니다.
누각 형태의 팔작집인데, 이렇게 누각 형태로 강당이 있는 것은 드물다고 하네요.
그래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나 봅니다.
정면에서 보면 누각 형태가 두드러지겠지요.
강당 뒤에는 사당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선학후묘의 구조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하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는 보이지 않더이다.
아마 중간에 소실되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경은 선생의 제단에 대한 설명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호
팔작으로 보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ㅎㅎ
이경은 선생 부조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참고) 부조묘란?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하지만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다.
따라서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게사를 지낼 수 있다.
용계서원의 소유와 관리는 벽진 이씨 경은파 종중에서 하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 벽진 이씨들이 제법 있습니다.
이 문중들은 도시에 살면서도 위아래 질서가 엄격하더라는
동창끼리도 확실히 질서를 찾더라는....ㅎㅎ
2월, 8월 중순 경에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당연히 음력입니다)
그때 맞춰 답사할 수 있을지....
관리가 비교적 양호하게 되어 있었으나
향나무 관리는...
제가 갔을 때는 산수유꽃가 한창 피었을 때이니...
제법 시간이 지났네요.
뭐가 이리 바뿐지, 정리가 참 더디게 되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부산에서 여기까지 왔다가
우리 집도 들리지 않고 갔다기에,
(울집에서 여기까진 11키로입니다.)
조께 섭섭해서(?)...
용계서원이 어떤 곳인지 챙겨봤습니다.
웅장한 맛은 없어도 앞엔 영천호를 두고
뒤는 기룡산을 엎고 있으니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위치에 있고
무엇보다 번잡하지 않고 농촌 풍경도 완상하면서
서원의 풍미를 맛보기엔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담은 영천의 또 어디로 갈까요?
출처 : http://blog.daum.net/choije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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