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퍼진라맹 글 : 옆지기
12월 31일 아침 여행 7일째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을 이국에서 보내는 것이
제 오십 평생 처음있는 일입니다.
시차 관계로 언제나 눈은 아주 이른 새벽에 떨어집니다.
씻고 차림해서 지중해 일출을 보려고 나섭니다.
힐사이드 호텔의 수영장을 가로질러 해변이 보이는 곳으로 나갑니다.
등황색의 새벽빛은 세계 어디에서 보아도 가슴이 뛰는 빛입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날입니다.
터키는 우리 나라의 약 8배 면적의 크기인데
인구는 약 7천만 명에 불과합니다.
동서로 긴 편인데 지금까지 우리 일행의 이동 경로는
서쪽 항구 체쉬메에 도착해서
한 시간 정도 남쪽으로 이동해 셀축을 둘러보고
셀축에서 다시 버스로 네 시간 거리의 데니즐리(파묵깔레)를 향해
거의 직선상의 동쪽으로 이동하였으며
데니즐리에서 안턀라로 버스 네 시간의 거리
정남향으로 내려와 지중해에 도착해 있는 상태입니다.
터키를 중심으로 보면
터키의 서쪽 바다(그리스와의 사이에 있는)는 에게해
터키의 남쪽 바다는 지중해
북쪽 바다는 흑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거의 종일을 버스로 이동하여
터키 중심부 쪽 분지인 '카파토키아' 근처까지 가야합니다.
(비스듬히 북동쪽으로 이동해야 함)
새해 일출을 '카파토키아'에서 열기구를 타고
함께 보기로 일정을 잡았으나, 터키 국내인들도
마음 먹어야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호텔이 만원이라
약 한 시간 정도 못 미친 '악사라이'에 오늘의 숙소를 잡아 두었습니다.
공기가 오염되지 않아선지
지중해의 일출은 참으로 선명한 색감으로 다가옵니다.
해변 자갈돌 사이로 물이 빠져 내려가는 소리 또한 경쾌하게도 들립니다.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어 해가 수평선을 올라서는 것을 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합니다.
이날 아침의 식사는 모처럼 만찬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달고 상큼한 석류를 몇 개씩 먹었고
깔끔하게 말려둔 살구는 작은 도시락에 담아
간식용으로 챙겼습니다.
우리 나라 곶감 같았는데 곶감 보다는 좀 새콤한 맛이 강합니다.
세계 10대 호텔이 든다는 힐사이드 호텔을 아쉽지만 떠납니다.
제 평생에 다시는 이 호텔에 올 일이 없을 듯 합니다.ㅎㅎ
원래는 일정에 없었는데 저를 비롯해 몇 분들이 간청을 해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팜필리아 유적지의 중심 도시인
'페르게'의 유적들을 1시간 정도 둘러보러 갑니다.
당당해 보이는 열주들이 서 있기는 하나
이제 복원중인 이 열주들은 너무 시멘트 맛이 강하게 나서
기원전에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여지없이 깨어버립니다.
또한 셀축에서 만났던 거대한 에페소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온 뒤라
웅장함이나 화려함, 거대함으로는 비교가 안 됩니다.
단지 온난하고 비옥했던 토지에 꽃피웠던 고대 도시의 흔적을
잠시 느껴보고 싶어 이른 아침에 들러본 것이지요.
페르게 사람들은 고대의 도시가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전사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말하지만,
역사 기록에 등장한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이후입니다.
셀레우코스, 페르가몬 왕조의 지배를 거쳐
로마 시대로 들어가면서 팜필리아의 중심 도시로 번영하다가
6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들이 침략해 들어오면서
쇠퇴하고 파괴되기 시작해 폐허로 변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적지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돌더미에 귀를 대면
켜켜이 지나온 세월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려줄 듯합니다.
모처럼 호텔에서 무료로 주던 끓인 물을 보온병에 넣어온 날이라
이 폐허의 유적지 한가운데 앉아 한가롭게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손끝이 시린 듯한 아침이지만, 하늘 빛깔도 아름답고
오랜 시간 고여있던 고적함의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거의 관광객이 오지 않는 이 유적지에
우리 일행이 들어서는 것을 언제 보았는지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손으로 만든
팔찌랑, 목걸이 등을 내놓고 권합니다.
보석은 아니고, 돌조각 같기도 하고, 세라믹이나 옥 같기도 한데
한 개 5유로라고 하네요.
세 개 10유로에 몇 여자 샘들이 샀습니다.ㅋㅋㅋ
터키석 비슷한 돌도 박힌, 둘둘 감는 팔찌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바오로가 1차 전도 여행에서 방문한 곳이
바로 이 빛나는 도시였다고 하는데요
이곳에서 바오로의 포교가 성과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지 못한다고 합니다.
페르게는 초기에 크리스트교를 수용한 도시 중의 하나였답니다.
물이 귀한 나라에, 이렇게 물이 고인 흔적을 보니
아마 여기에도 분수나 목욕장 시설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터키의 고대 유적지에서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이 문양은
아카사스 나무의 잎사귀 모양이라고 하는데요
아카사스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로컬 가이드 세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꼭 불교의 만( 卍)자를 닮았던 멘데레스 강의 문양을 강조했었는데
고대 멘데레스 강과 달라만 강 사이의 지역을 '카리아'라 불렀으며
이 카리아인이 터키의 원주민이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집트, 앗시리아, 스키타이 등의
침략을 받고, 다시 페르시아를 거쳐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 당하기까지
숱한 침략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보면, 이 지역이 고대에는
아주 비옥하고 살기 좋았던 땅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지요.
비록 지금은 버려진 지 오래된 폐허의 시골에 불과한 곳이지만...
할머니의 유창한 영어 설명을 다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듣고 정리한 내용인데, 이때 멘데레스 강의 문양은
사진이 찍히지 못했네요. 남편이 다른 곳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드나드는 입구쪽에 위치한 교회터의 흔적입니다.
입구에 나오니 들어갈 땐 없었던 좌판이
이렇게 거창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옥으로 만든 그릇과 접시와 항아리, 꽃병, 재떨이 등입니다.
아래쪽은 장신구들이고
눈알 같이 생긴 새파란 장식품은
터키인들에게 행운을 주는 부적의 일종인
'나자르 본죽'이란 것인데 새해가 되면 모두
이것을 하나씩 새로 사서 달고 다니거나 품고 다닌다고 합니다.
나중에 우리들도 저것 선물용으로 많이들 샀습니다.
유적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던 아나톨리 고등학교인데요
모두들 학교 샘들이다 보니, 궁금해서 들러 보았습니다.
수업중인 모양인데 시설이 깨끗하고 비교적 좋아 보였습니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기숙형 고등학교인데 명문 학교랍니다.
터키의 학년제는 5-3-4년제라
고등학교는 4년제라고 하네요.
중학교까지는 의무 교육이라니 우리랑 같습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나오자 모두 함께 기념촬영
모두 미인들입니다.
교실에서도 모두들 머리를 내어밀고 야단 났습니다.
조그만 시골 학교에서 아마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쁜 일정에 차를 타고 떠나려는데
한 남학생이 급하게 뛰어와 서툰 영어로 이야기합니다.
지네들과 30분 정도 영어로 토론을 해주시면 어떻겠냐고요.
성격도 좋아 보이고, 잘 생긴 남학생이지만
다른 기회를 얘기하며 떠납니다.
저런 적극성이면 얼마든지 유창한 영어를 배우겠지요.ㅎㅎ
귀가 멍멍해지도록 높은 토로스 산맥을 넘어
하염없이 갑니다. 지루함을 견디려고
가이드가 노래 자랑을 시킵니다.
착한 샘들, 모두 숨겨놓은 18번을 한 곡조씩 꺼냅니다.
좀 연로해 보이는 우리들의 기사님과
육중한 몸매와 60의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시던 로컬 가이드 새빔 할머니입니다.
멀리 차창 밖으로 눈덮인 산들이 보입니다.
거의 2,500M가 넘는 산맥을 넘어가는 중입니다.
노래 자랑 다 하고 한숨씩 낮잠도 자면서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들에 오감을 열어 놓습니다.
12시가 넘어서야 오늘 점심을 먹을 1,800M 고지에 있는 '악차이'에 도착합니다.
고지대라 차에서 내리니 기온이 아주 차갑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별장 같은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식당은 우리 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같습니다.
접시에 담겨 있는 반찬마다 가격이 정해져 있어
먹는 만큼 돈을 계산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방법은 또 어떤 것을 먹어야하나...하는 걱정을 덜어 줍니다.
주는대로 먹습니다.
빵은 늘 바구니에 담겨져 있고(빵은 언제나 무한 리필입니다)
잘라 잘라 올리브유를 뿌린 채소와
닭고기 볶음과 밥, 그리고 토마토 스프가 나옵니다.
이만하면 점심으로 만찬입니다.
연로하신 왼쪽의 할아버지가 이 식당의 주방장이라는군요
멋진 명함도 한 장 건네주고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마당에는 키우는 오리들이 마음껏 다닙니다.
오리가 화살표 반대 방향으로 가네요..ㅋㅋ
점심 먹고 다시 버스 타고 2시간 남짓 달려 마침내 '콘야'에 도착했습니다.
룸 셀주크 시대(셀주크의 분파로 로마령이 셀주크를 의미)의 수도였던
'콘야'는 종교의 도시로 호텔에서도 술을 판매하지 않는 엄숙한 분위기라고 합니다.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인 '매블라나 박물관'으로 들어갑니다.
'매블라나'는 이슬람교에서 나온 새로운 종파의 이름입니다.
매블라나교를 창설한 사람은 '젤라레뜨 루미'인데
그의 사망 이후로 사람들이 그가 창시한 종파를
그의 이름을 대신하여 불렀으며 지금은 일반화 되었습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면 맨먼저
매블라나교의 성인들 관이 자리한 묘소가 있습니다.
각각의 지위를 상징하는 커다란 터번들이 관 위에 둘러져 있는데
가장 큰 터번이 '루미'의 것이며 유해는 관 아래쪽 땅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아래쪽 초록 터번이 '루미'의 것입니다.
터키의 전통 악기들인데
매블라나교의 특징은 이런 악기 연주에 맞추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춤을 계속 추면서 무아의 경지로 빠져 들어가는 의식을 행합니다.
그래서 이 종파를 '신비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이슬람교에서 하나의 종파를 새로이 창시한
'종교개혁자'라는 말이 적당할 듯합니다.
'루미'가 의식을 행할 때 쓰던 모자인데
코란의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사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금가루로 하나하나 글을 새겨 만든 코란도 있었고
기도에 사용되던 양탄자며
정교하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 종교용품들이 세월의 두께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런 하얀 복색을 하고 긴 모자를 쓰고 일제히 한쪽 방향으로
3시간 정도를 빙글빙글 끝없이 도는 것이
매블라나교의 종교 의식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도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마침내 망아 [忘我]의 경지에 이르러
신의 경지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춤은 남자들만이 추고, 춤추는 사람을 '매블레비'라 하며
이에 반해 여자들의 춤은 '벨리 댄스'라고 합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들의 의상은 거의 눈만 내어놓고 다니는 것이 기본인데
선정적이고도 노출이 심한 벨리 댄스를 춘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요?
아마도 '금기'에 대한 인간들의 도전이 아닐까 싶습니다.ㅋㅋㅋ
'매불라나 박물관'에서 길 하나를 건너니
도심 속에 이런 대규모의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종교와는 관계없이 이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었다고 하네요.
건너편에서 비로소 '매블라나 박물관'의 상징인
초록색 몽당 연필같은 첨탑이 잘 보입니다.
매불라나 사원이자 박물관이자 묘지인 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차분하고 경건함 그 자체였습니다.
'콘야'에서 유명한 박하 사탕이라는데요
줄로도 매달아 놓고 봉지에도 담아놓고 팝니다.
입에 넣으면 공갈 사탕처럼 금방 녹아버리는 데
단 것 좋아하는 터키 사람들이 아주 좋아한답니다.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는 집입니다.
시내에는 아직도 말이 끄는 수레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공기가 아주 맑은 편입니다.
아쉽지만 '매블라나 사원'을 떠납니다.
잘생긴 터키 청소년들 몇이, 한국의 미인들은 알아가지고
미나랑 하은이에게 사진 같이 찍자고 들이대는 통에
몇 장 찍어 주었는데, 나중에는 모두 개인 사진 찍자고 야단이 나서
새빔 할머니가 쫓아 버렸습니다.ㅎㅎㅎ
이날 밤이 되도록 한없이 달려 가는 길~!
끝없이 펼쳐진 길 위에서
한쪽에선 일몰이 시작되었고
그 반대쪽에선 달이 둥실 떠오르던 광활한 지평선의 모습~!
우리 나라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길 위에서
모두들 차에서 잠시 내려 이쪽과 저쪽을 열심히 바라보던 눈동자들이 생각납니다.
끝없이 어어져 있는 길과 크고 거대하다는 것
작고 아기자기한 것들만 눈에 익은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이날 밤은 '악사라이'에 있는 호텔에서
향수를 달래며 모두들 안부의 전화를 집으로 한 통씩 했었고
이국에서 송구영신을 하였습니다.
호텔 나이트클럽에서는 그래도 터키 젊은이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연말의 밤을 뜨겁게 익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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