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퍼진라맹 글 : 옆지기
!2월 29일 여행 5일째 날
짐을 챙겨 4시 30분 깜깜한 항구에 내리니
우리 일행 말고는 거의 사람도 없습니다.
제법 거대한 배를 우리 일행이 독점해서 타고 9시간을 왔습니다.
밤새 풍랑이 심해 침대에서 흔들리며 자느라고
숙면을 취하지 못해 모두들 푸석한 얼굴들로 내렸습니다.
'히오스'섬에 단 하나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에서
날이 샐 때까지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약 오만 명이 산다는 이 섬에 한국인은 오직 세 사람이랍니다.
우리를 마중나온 장세연씨와 그녀의 시고모부 내외분
너무 먼 곳에 결혼해와서 그것도 남편은 이스탄불에 있어
한 달에 한두번 만날까 말까 하면서 산답니다.
호텔 로비에 푹신하고 커다란 쇼파가 많아
그곳에 묻혀 앉아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로 소일하다가
동이 틀 무렵에 일출 보러 걸어서 10분 거리의 해변으로 갑니다.
밤새 우리가 배를 타고 건너왔던 에게해 위로 장엄한 해돋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변의 집들 어디에선가 닭우는 소리가 들리니 새삼 정겹습니다.
우리 나라 어느 어촌쯤인 듯한 느낌도 듭니다.
온바다가 불타는 듯하면서도 구름이 많아
쉽게 햇님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켜켜의 구름 사이로 불을 토하다 낼름 혀를 잠시 내밀고
또 숨어버리는 사이 이런 장관이 연출되었습니다.
해변에 쪼그리고 앉아서
여기는 조약돌도 대리석이 아닌지 만져 보았습니다.
동글동글한 돌들과 잠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너희들 나 따라서 한국에 갈래?, 평생 여기서만 지내면 심심하니까
비행기 열 시간도 넘게 타고 가는 먼나라인데
거기에 함께 가서 우리집에 살래?"
조약돌 몇 개를 집어서 주머니에 넣어 한국에까지 가져 왔습니다.
지금 우리집 거실에 눈치보며 자리하고 있습니다.ㅎㅎ
우리가 타고 떠날 버스입니다.
저기 멀리 롱코트 입고 있는 여인이
이 먼 이국으로 시집온 지 이 년 되었다는 새색시 장세연씨입니다.
여름 한 철만 유명한 휴양지로 사람이 벅적거리다가
한겨울에는 거의 사람 구경하기도 힘든 시기랍니다.
우리처럼 간간이 페레우스 항에서 배를 타고 체쉬메로 건너가는 한국 관광객들
중간에 연계해주고 근근히 호텔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침은 아주 간단한 토스트와 우유, 커피로 때우고 또 출발합니다.
히오스항에서는 출국 수속을 하고 체쉬메에서는 입국 수속을 합니다.
히오스항에서 체쉬메로 오는 약 1시간 20분 정도의 뱃시간에
허기도 지고 국물도 먹고 싶어, 호텔에서 특별히 부탁해서
보온병에 넣어온 물로 컵라면 하나 말아 둘이 나누어 먹었는데
얼큰한 국물이 어찌나 맛나던지 눈물 날 지경이었습니다. ㅋㅋㅋ
밤새 파도에 시달렸던게 거짓말처럼 아침의 항구는 잔잔합니다.
9시 40분경 우리는 터키땅인 체쉬메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비중을 두었던 터키 여행이 시작된겁니다.
항구를 나서니, 현지 가이드 나은희씨와 로컬 가이드 세빔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지요.
터키에서 첫번째 여정인 '셀축'으로 가는 길입니다.
멀리 우리 나라 대관경에서 본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날씨는 맑은 편이었습니다.
지중해가 가깝다 보니, 온도도 아주 쾌적한 좋은 날씨였습니다.
이번 여행에 우리 일행들은 여러가지로 복 받은 느낌입니다.
바람이 불다가도 그치고, 비가 오다가도 개이고,
하늘이 잔뜩 내려앉았다가도 또 밤이 지나면 맑아지고는 했습니다.
성질머리 고약한 한국 사람들이 온 것을 미리 알았나 봅니다. ㅎㅎ
버스 창 너머로 견고한 셀축성이 지나갑니다.
아나톨리아~! 소아시아~! 그리고 터키~!라고 불리는 땅~!
히타이트, 이오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셀축 및 오스만투르크 등
한때 인류 역사의 최강국으로 군림했던 나라들의 중심 무대였던 나라,
메소포타미아와 오리엔트 문명을 잉태하였고,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이슬람권과 기독교 문화가 기묘하게 모자이크 되어 있는 나라,
숨겨진 유적지를 100만명의 고고학자가 100년 동안 발굴하여도
고작 10%정도만 발굴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문화의 보고지...
가슴 설레는 이 땅에 드디어 왔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었지만, 터키인들은 유럽의 땅 3%를 얻기 위하여
에게해에 떠 있는 그 무수한 섬들을 모조리 그리스에게 양도했었던,
그래서 터어키쉬가 아니라 투루키에라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동양의 이슬람 문화권이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과 향수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것이리라.
'술탄'은 터키어로 '왕'을 뜻합니다.
그야말로 왕궁에 차려진 연회장 같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래쪽에 있는 시레기죽 같은 것이 제일 입에 맞았는데
알고보니 시레기가 아니라 시금치였습니다.
시금치는 살짝 데쳐서 먹어야하는데
여기서는 거의 요리 방식이 푹 삶아서 죽을 만들어 먹습니다. ㅋㅋ
일단 이것저것 입에 맞는대로 대충 배를 든든하게 채웠습니다.
남은 시간 거대한 폐허의 도시를 계속 걸어야 할 것이므로
무엇을 사 먹을 수 있는 곳도 없을 것이므로
빵 몇 조각 봉지에 싸서 가방 안에 넣고, 물병 챙기고
야무지게 준비해서 함께 나섰습니다.
첫 여정인 '사도 요한의 교회터' 입구입니다.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두어 입구 앞에서만 둘러보고 나옵니다.
이 도시의 행정명은 '셀축'인데 사람들은 이곳을 '에페스' '에베소' 등으로 부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한 부분인 '에페소서'를 사도 요한이 집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3년간 머물면서 초기 7대 교회의 하나인 '에페스 교회'를 세운 곳이기도 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생애의 마지막 시기를 이곳에서 보냈다고 하여
기독교 성지의 하나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찌르면 푸른 물이 주르륵 흐를 듯한 하늘 좀 보세요.
기가 막히게 푸릅니다. 이 변덕스런 날씨 속에서
우리는 궂은 날씨와 계속 숨바꼭질을 하며 여정의 끝까지 갔습니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다는 '아르테미즈 신전'이 이제 기둥만 하나 덩그렇게 남았습니다.
기둥을 기준으로 잘 보세요.
기둥에 걸려 있는 저기 먼 곳의 건물이 예수를 위해 세운 '이슬람 사원'이고
기둥 왼쪽이 아까 본 셀축성이고, 오른쪽이 조금 전의 사도 요한의 교회터입니다.
모두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설명만 합니다.
셀축 성곽
예수를 위해 지어 준 '이슬람 사원'을 바라보면서
이슬람교의 원리는 공존공생이지, 종교를 빙자하여
무자비하게 테러와 살륙을 감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리를 변형시켜 세뇌시킨 결과겠지요.
모든 종교의 원리가 사랑과 평화를 벗어나는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바꾼 것 뿐이지요.
성경의 4대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라고 합니다.
그 중의 하나인 '누가'의 묘로 알려져 있는 묘를 둘러 보았습니다.
십자가 아래쪽에 그려진 황소 문양이 '누가'를 상징하는 문양이라고 합니다.
터키의 로컬 가이드 '세빔'할머니 입니다.
올해 60세로 학교 영어 교사를 하다가
퇴직을 하시고 가이드를 하신다는데
아들은 의사, 딸은 변호사를 한다고 합니다.
다리도 아파 보이고, 배도 엄청 나와 힘들어 보이는데도
끝까지 따라 다니며 열심히 영어로 설명을 해 주시던 최선을 다하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슴 설레며 에페스(에배소)유적지를 향해 갑니다.
에페스에 사람이 산 지는 기원전 6000년 경 신석기 시대부터라고 하지만
이 도시가 본격적인 발전과 번영을 이룬 것은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의 통치하에 있던 B,C 3C~ A,D 2C경에 걸쳐 거대한 도시를 이루면서였고
이후 6C경에 소아시아의 수도이자 최대의 항구 도시로
인구 20만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6C 이후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1090년 셀축트루크에 점령 당하면서 소도시로 전락되었다가
점점 황폐해져 버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화려했던 모습을 우리는 상상을 통해 복원했지만
남아 있는 돌더미의 잔해만으로도 이천 년 전의 이 도시가
얼마나 거대하고 화려했었던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탈리아에 남아 있는 어느 로마 유적지 보다도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특이한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로마는 터키의 서남쪽에 있는 이 에페스를 바탕으로
거대한 터키를 점령해 체계적으로 지배해보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입구부터 들어갑니다.
에페소 입구 영문 안내문 옆에 유일하게 위치하고 있는 한글 안내문인데요
우리의 기업 삼성에서 협찬하여 이렇게 세워 두었던 것이 어찌나 자랑스럽던지요.
요즘은 정말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대한민국이 돋보입니다.
우리 민족처럼 부지런하고 억척스럽고 깔끔하고 인정스런 민족이 잘 없으니 당연한 게 아닐까요.ㅎㅎ
맨처음 만난 '바리우스 목욕탕'입니다.
냉탕, 온탕, 열탕 등으로 방이 나누어져 있었고
한 곳에서 불을 때어 관을 통해 온풍을 전달하여
사우나 방식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는 건물입니다.
목욕탕 오른쪽으로 멀찍히 보이는 두 줄의 열주 사이는 도로이며
그 위쪽의 둥근 공간은 '오디온'이라 불렀던 야외 음악당입니다.
열주 앞쪽으로 돌더미가 흩어져 있는 이 공간은
'바실리카'라고 하는데,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측합니다.
(바실리카 - 고대 로마에서 재판소나 상업 회의소 따위로 사용되었던 직사각형의 집회소)
이오니아식 기둥 하나(중간 시멘트 부분은 보수한 곳)
잠시 고대 로마인이 되어 전차나 마차를 타고
이 거리를 지나가는 상상을 해 봅니다.
도열해 있는 기둥들이 일제히 인사를 해 올 것 같습니다.
혼자 히~죽~ 웃으면서 이천 년 전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터키처럼 여러 민족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른 나라가
이런 대규모의 도시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행복했습니다.
야외 음악당을 지나 아치형의 조그만 문을 통해 옆 건물로 들어갑니다.
이끼 끼어 오래 견딘 돌들을 하나씩 만져보면서,
이천 년 묵은 시간의 두께를 느껴보려고 가만히 눈을 감아 보았습니다.
저기 우뚝 솟아있는 두 기둥과 그 일대는
시 공의회(피르타네이온) 자리였던 곳입니다.
기둥에는 지금까지도 지도자의 이름이 세겨져 있고
중앙에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성화를 피워 두었으며
이 성화를 관리하는 여사제들은 평생을 처녀로 지내며
공의회 앞마당에 있는 방에서 거주했다고 합니다.
가이드 말을 들으며 열심히 메모하고 있는 이 돌장식은
칼과 뱀의 문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당시의 '병원'이었다고 합니다.
뱀은 히포크라테스의 상징이고, 칼은 수술을 의미하는 병원 간판인 셈입니다.
이 사거리에서 잠시 자유시간을 얻어
폐허의 여기저기를 혼자 기웃거려 보다가 돌아나오는데
노년의 부부인 듯한 두 남녀가 길 가운데서
어찌나 찐한 키스를 오랫동안 하고 있던지...
지나오지도 못하고, 서 있기도 그래서 참 민망했다는...ㅎㅎㅎ
유럽 사람들은 감동 받아도 그 자리에서 키스하는 모양입니다.
승리의 여신 니케(나이키) 부조
사진 우측의 두 기둥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도미티아누스 신전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이름을 딴 신전)
좌측으로 아치형과 양쪽의 기둥을 쇠막대로 연결한 곳이
폴리오의 우물입니다.
에페스의 부자였던 폴리오와 그 가족들이 97년에 만든 우물이랍니다.
대리석 바닥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 거대한 길은
전차와 마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귀족들의 전용 공간이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이 길만 보아도 그 옛날 이곳의 번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귀족 전용 공간을 지키는 헤라클레스 상
오른손으로 사자 꼬리를 잡고, 왼손으로 사자 머리를 내려치는 모습~!
이 곳을 들어가려는 사람이 귀족이 아닐 때는
이 검역대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지금까지 계속 바닥은 대리석을 사용해 연결하고 있습니다.
위와 아래 사진 모두 트라이언의 우물입니다.
트라이언 황제의 이름을 따서 2C 초에 건축되었으며
12m 높이의 기둥에는 여러가지 동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대영 박물관과 에페스 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위, 아래 사진 모두 귀족들 전용 공간 안에 있던 고급 상가앞의 도로 장식인데
모자이크처럼 작게 자른 천연 색타일의 문양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이곳에는 지붕이 있어 실내처럼 다닐 수 있었고
곁에 있는 대리석 도로에는 전차나 마차가 통행했다고 합니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보석을 사러 저 항구의 끝자락에 내려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가 믿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지금까지도 선명한 이 타일의 색상이며 문양은
참으로 놀라운 예술의 경지였습니다.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목욕탕의 크기는 한번에 천 명 정도 수용한 수 있는 시설이며
냉탕, 열탕, 사우나, 탈의실이 갖추어져 있었고
천장에 설치된 파이프를 통해 따뜻한 공기 순환 방식으로 난방을 했다고 합니다.
휴게실, 스포츠실 등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남,녀가 함께 사용하였으나, 시간대를 조절하여
공용으로 이용했다고 하니, 지혜로움도 새롭습니다.
지금은 바닥에 물만 질펀하게 고여 있네요.
드디어 저 멀리 그 유명한 셀수스 도서관이 보입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입니다.
아까 설명한 도미티아누스 신전 이후 두번째로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입니다.
138년 에페스 시민들이 지어 로마의 오현제로 추앙받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국가의 내실을 다지고, 제국의 기초가 되는 제도들을 혁신했으며
학문과 예술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던 황제에게
속국의 시민들이 지어 바친 것으로, 그 섬세한 아름다움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어 에페스 유적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적이라 할 만합니다.
우리 일행들 중에 여인들만 사이좋게 앉아 있는 이곳은 공중화장실입니다.
그 오랜 옛날에 아래로 물이 흐르게 만든 수세식 화장실이라 하니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겨울에 차가울 땐, 노예들을 먼저 앉혀 자리가 데워지면
마님들이 와서 앉았다고 하네요.
둘러쓰고 다니던 망또로 아래쪽을 가리고 앉았다는군요.ㅎㅎ
에페스의 유적지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입니다.
유일하게 전면의 이층 구조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했을까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총독이었던 셀수스를 기념하기 위해
135년 그의 아들이 시작하여 손자대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완공 당시 이 도서관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터키의 버가도 도서관과 함께
세계 3대 도서관의 하나로 12,000권의 두루말이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답니다.
후대에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파괴되고, 지진 등으로 다시 붕괴되었으나
1970~78년 사이에 오스트리아에 의해 복원 되었습니다.
1층 전면으로 8개의 기둥이 있고 각각 4곳의 조각상은
지혜,지식,지능 및 덕망을 의미하나, 복제품이며 진품은 비엔나 박물관에 있습니다.
셀수스의 무덤은 도서관 중앙의 지하에 위치해있다고 전합니다.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아마도 함께 있었을 듯한
고대의 유곽 광고입니다.
발자국옆의 여인의 얼굴과 발자국 위의 하트 모양, 그리고 돈과 장미 다발
그림의 광고 내용인즉
" 여인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돈과 장미꽃을 들고
앞쪽 방향 오른쪽으로 오시오. 단 이 발자국 보다 발크기가 작은 사람은 출입 금지"
아마도 '매춘'이란 말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필요악이지 싶습니다.
매춘을 금지하는 이슬람 문화권에는 성범죄가 그렇게 많다는군요.
마지막으로 북쪽 입구의 대극장 앞에서
한국의 가수가 노래 한 곡 열창했습니다.
소리가 쩌렁쩌렁 저 하늘 위로, 저 언덕 위에서
풀 뜯어 먹고 있던 양들에게까지 들려 양들이 메~헤~하고 답가를 했습니다.
항구로 이어지는 거대한 도로입니다.
예전에는 저 거리 끝에 항구가 닿아 있었고
항구에서 물건을 싣고 배들이 끊임없이 드나 들었으며
이집트에서 온 클레오파트라가 쇼핑하러
이 도로 위를 전차를 타고 지나갔다고 합니다.(믿거나 말거나)
거의 9Km를 걸어다니고도 우리는 아쉬움을 남기며
이제 북쪽 출입문을 향해 발길을 돌립니다.
한번 더 이 거대한 도시를 마음속에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쭈욱 훓어보며 돌아 나갑니다. 아마도 내 생애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하겠지요.
북쪽 출입문 입구로 나오니
몇 시간을 걸어 목도 마르고 배고 출출할 즈음에
싱싱한 석류 즉석 쥬스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1컵에 4리라 달라는 것을 3리라로 깎아서 23잔 단체로 먹었습니다.
아주 새콤달콤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셀축에서 파묵깔레가 있는 데니즐리까지
버스로 두 시간 넘게 이동하였습니다.
7시가 넘어서야 석회질 온천수로 유명한 파묵깔레의
POLAT HOTEL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미지근한 온천수 위에서 예쁜 오리들이 무리지어 놀고 있었습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달걀을 쪼개 던져주니 와르르 내게로 몰려오네요.
모처럼 호텔 온천수에 온천욕을 하고 또 하룻밤 여장을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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