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6시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려 버스에 싣고, 7시경 쿠시나가르 교외에 있는 부처님 다비장에 도착했다. 인도에 오기 전에 금강경 천 독을 하고 오리라던 계획은 차질을 빚어, 988독을 하고 떠났었는데 이곳에 오는 동안, 공항이며 호텔에서 틈틈이 천 번을 채웠고 마침내, 위편삼절(아니 일절이 맞겠다. 책은 한 권이니)의 경지에도 이르러 900독을 넘어서자, 금강경 책이 낱낱이 떨어져 겨우 얽어매어 다닌 처지라, 아낌없이 태워버렸다. 위기가 기회가 되어버린 경우를 이번에 절실하게 경험했다. 고락푸르의 폭동이 아니라면, 예정에 없었던 쿠시나가르에 올 수도 없었으며 이 안개 낀 아침을 맞을 수도 없었겠지. 금강경 천 독의 보답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며 나 혼자 가슴 뜨거운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에 들러 참배하고 제주도의 관음사에 계셨다는 성관스님을 뵙고 어제 저녁 폭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폭도들에 의해 차가 불타고, 사람들이 제법 죽었고 카메라 들이대고 사진 찍던 어떤 관광버스는 폭도들이 유리창 깨고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몇 사람이 다쳤다는 이야기 등등을 내려 놓으셨다. 여기서 무청이 많이 달린, 무김치를 얻어서 저녁엔 특별 주문한 닭백숙과 어찌나 저녁을 잘 먹었던지... 엔 이렇게 묘사한다. 춘다의 집에서 공양을 하시니 여래의 병이 무거워지고 목숨의 끝에 가까워졌네. 전단나무 버섯을 드시고 병이 더욱 도졌지만 병을 안고(설사를 하면서), 길을 걸어 쿠시나가라로 가셨네. 춘다가 살던 마을에서 20Km를 걸어, 히라냐바티 강을 건너 말라족이 사는 쿠시나가라 사라나무 숲에 이른 부처님은 아난다를 시켜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베개를 북쪽으로 놓고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자리를 마련하도록 했다. 부처님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발을 포개어 모로 눕는다. 이때 사라나무는 제철도 아닌데 꽃이 피어 부처님 몸 위로 흩날려 내렸다고 한다. 를 모방해서 세운 사찰로 스리랑카 불교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르마팔라’ 스님이 세우셨다.
출처 : ★부산 맛집기행★
글쓴이 : 퍼진라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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